트럼프, 역사 박물관 팜플렛도 들여다본다…“미국 이상과 부합해야”

입력 2025-08-13 17:12 수정 2025-08-13 20:17
국립자연사박물관. 게티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박물관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대상은 스미스소니언 재단 산하 박물관들로 미국역사국립박물관, 국립자연사박물관 등이 포함된다.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해당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미국의 이상’과 부합하는지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스미스소니언협회에 서한을 보내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콘텐츠는 120일 이내에 조정해야 하며 분열적이거나 이념적인 언어를 통합적이고 건설적인 설명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요청 자료는 전시물뿐 아니라 조직도, 관람객 설문 응답, 스미스소니언 지원금을 받은 작가 목록, 외부 파트너 목록, 전시·작품 선정·승인과 관련한 내부 소통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증빙하는 자료까지 포함된다. 박물관들은 30일 이내에 요청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검토는 스미스소니언 산하 박물관 21곳 중 8곳에서 먼저 시작된다”며 “전통적으로 행정부의 관할에서 독립된 스미스소니언 재단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미스소니언협회는 21개 박물관과 14개 교육 센터, 국립동물원 등을 산하에 둔 세계 최대 전시‧연구 재단이다. 워싱턴DC에만 항공우주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미국역사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을 뒀다.

트럼프 행정부가 스미스소니언 재단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행정명령 때부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미스소니언 재단 산하 기관에 대해 ‘미국 역사의 진실과 정신 회복’ 행정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분열적이고 인종 중심적 이념의 영향을 받아 미국과 서구 가치를 해롭고 억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6월 재단 산하 전미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의 킴 사제(Kim Sajet) 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해고 촉구로 사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 대해 “편향적이며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의 옹호자”라고 비난했다.

백악관은 서한을 통해 “일상적인 큐레이터 업무를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열적이고 당파적인 역사를 제거하고 문화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며 “정확한 역사를 통해 고무적이고 포괄적인 미국 유산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단은 성명을 내고 “우리의 작업은 엄격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학문적 탁월함, 정확하고 사실적인 역사에 대한 깊은 헌신을 바탕으로 한다”며 “백악관, 의회, 이사회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은 대통령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지만,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도록 구성돼 있다. 부통령을 포함한 이사 1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운영을 맡으며 연방대법원장이 당연직 이사장이다. 연방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세라 웨익슬 미국역사협회(AHA) 사무총장은 WSJ에 “역사의 정확성을 보장받기 위해 교육받은 역사학자와 큐레이터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미국의 역사를 온전하고 복합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에 대해 다수의 저술을 해온 역사학자 사무엘 레드먼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산사 기관들의 자율성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