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문화재단의 ‘클래식 레볼루션’은 2020년부터 매년 서울의 늦여름을 클래식 음악으로 채우고 있다. 오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열리는 올해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는 첫해다.
카바코스가 제안한 올해 축제의 주제는 ‘스펙트럼’, 부제는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다. 바흐는 대위법의 정수와 신학적 이상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 질서를,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예술의 윤리와 인간성을 음악으로 대변한 작곡가다. 쇼스타코비치는 생전에 바흐의 ‘푸가의 기법’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체화해 자신의 ‘24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함으로써 바흐의 정신을 20세기에 계승했다. 카바코스는 “바흐의 구조와 쇼스타코비치의 고뇌처럼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제를 설명했다. 카바코스는 9개의 공연 중 2개는 지휘자, 4개는 연주자로도 나선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클래식 레볼루션은 매년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올해도 국내외 연주자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오케스트라는 카바코스가 창단한 아폴론 앙상블을 비롯해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6팀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를 주축으로 20명이 모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 상주 악단으로 창단됐다. 여기에 합창단인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지휘자 디마 슬로보데니우크,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말로페예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최하영 등 연주자 15명이 함께한다.
프로그램 가운데 오는 31일 카바코스와 양인모가 아폴론 앙상블과 함께하는 듀오 공연은 올해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이들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함께 연주한다. ‘더블 콘체르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두 바이올린이 ‘푸가’처럼 대등하게 서로의 선율을 엄격하게 모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서로 동질적이고 통일성 있는 음색과 연주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카바코스와 양인모는 바이올린 분야에서 세계적인 콩쿠르인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카바코스와 양인모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각각 1985년과 2022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988년과 2015년 우승했다. 동일한 음악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각각 다른 세대와 경험의 간극을 지닌 두 연주자가 바흐의 ‘더블 콘체르토’에서 만나는 순간은 단순한 협연을 넘어 세대 간의 예술적 대화이자 해석의 교차점을 드러내는 특별한 장면이다. 카바코스의 깊이 있는 톤과 양인모의 명료한 표현력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 궁금하다.
양인모는 오는 28일 영국에서 유서 깊은 음악축제인 BBC 프롬스에 데뷔한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BBC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양인모는 일정을 마치는 대로 귀국해 클래식 레볼루션과 함께한다. 31일 카바코스와의 듀오 무대에 이어 9월 1일 ‘체임버 뮤직 콘서트 IV’에서 바흐의 ‘바이올린 무반주 파르티타 제3번’ 독주와 쇼스타코비치의 ‘알렉산드르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 연주에 나선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