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부족해진 러시아의 노동력을 북한인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러시아에서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한데, 향후 5만명이 넘는 북한인들이 러시아로 보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BBC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길어지는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전사하거나 전쟁에 동원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진 탓이다. BBC는 러시아에서 탈출한 북한 노동자 6명, 한국 정부 관계자, 연구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로 간 북한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도했다.
북한 노동자 진모씨(가명)는 러시아 극동에 도착하자마자 북한 보위부 요원의 감시를 받으며 공항에서 건설현장으로 직행했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건설현장에 도착한 직후 18시간 동안 작업에 투입됐다.
인터뷰에 응한 6명의 북한 노동자들 모두 오전 6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했다고 증언했다. 1년 동안 쉴 수 있는 날은 이틀이었다.
강동완 동아대 북한학과 교수는 “야간에는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안전장비 없이 일한다”며 위험한 노동환경을 지적했다. 탈출 노동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비위생적인 컨테이너나 다 지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생활했다. 다른 노동자 남모씨(가명)은 공사현장에서 4m 아래로 추락해 얼굴이 크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많은 북한인들이 러시아에서 일하며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이 됐다. 러나 2019년 유엔은 북한의 핵개발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각 국의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했다. 대부분은 북한으로 송환됐다.
그러나 한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만명 넘게 러시아로 보내졌으며, 올해는 5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한다. 대규모 건설현장 뿐만 아니라 의류 공장, IT센터 등에도 북한인들은 배치되고 있다. BBC는 “북한 노동력 사용을 금지한 유엔 제재 위반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로 입국한 북한인은 1만3000명이 넘었다. 지난해 대비 12배 증가한 규모다. 이 중 8000명이 학생 비자로 입국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유엔 제재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또 최근 북한 정부가 자아비판 강화, 외출 축소 조치 등으로 해외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면서 과거보다 탈출이 훨씬 어려워졌다고 BBC는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으로 도망쳐나온 북한 노동자는 연 20명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10명 안팎이다.
한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재건에도 북한인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 이후 북한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 재건에 6000여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의 인력난에 북한 노동자는 완벽한 해법”이라며 “북한 노동자는 성실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서도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이어 “북한 노동자들은 김정은과 푸틴 전시 동맹의 지속적인 유산이 될 것”이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파견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