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이 자국을 중심으로 ‘일대일’ 무역협상을 진행하며 관세 장벽을 높이는 ‘트럼프 라운드’ 시대를 선포한 가운데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일이 소다자주의적 통상질서로 뭉쳐 돌파구를 모색한다는 취지다.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CPTPP 가입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보고 추진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정부 인사가 CPTPP 가입 추진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국회에 제출한 사전 답변서에서 “경제적 실익과 농수산업 등 민감 분야 지원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CPTPP 가입 여부를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CPTPP는 미국·중국 두 강대국이 배제된 일본 중심 소다자주의 통상질서다.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지식재산, 환경, 노동 등 무역 전반에서 투명성 기준이나 개방 정도(90%대 이상)를 높게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캐나다·호주·뉴질랜드·멕시코·칠레·페루·말레이시아·베트남·싱가포르·브루나이·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CPTPP는 원래 미국이 참여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로 고안됐다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이 불참하며 CPTPP로 재편됐다. 한국은 문재인·윤석열정부에서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CPTPP를 주도하는 일본과 역사 문제 등으로 관계가 경색됐고, 농어민 반발이 거세 적극적인 추진이 어려웠다.
CPTPP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중심 양자 간 통상협정을 다발적으로 추진하며 전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통상 질서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에선 미국발 보호주의 확산과 공급망 재편 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생존 전략이 필요하단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CPTPP에 가입한다면 가입국 간의 수출과 수입을 통해 미국발 통상 파고를 경감시킬 수 있단 평가다.
이재명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선순환에 접어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국제통상환경이나 국제관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가까운, 보완적 관계에 있는 한·일이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국제정세는 정말 대단히 엄중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중동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그렇다. 이같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한국과)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양 정상은 셔틀외교 복원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달 중 방일해 한·일 정상회담을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자리에서 CPTPP 가입에 대한 전향적 결과물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한국 가입 여부가 포괄적으로라도 언급된다면 공급망 안정화는 물론 경색 위기인 수출 활로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될 것으로 평가된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CPTPP에 참여한다면 수출 다변화는 물론 노동·서비스·지식재산권 등에 설정된 높은 기준에 맞춤으로써 한국 산업의 체질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