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고 출근?”…중국 청년들 ‘가짜 직장’ 열풍

입력 2025-08-12 10:47 수정 2025-08-12 13:50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일러스트입니다.

중국 광둥성 둥관시에 사는 30세 슈이 저우 씨는 올해 4월부터 하루 30위안(약 5803원)을 내고 ‘프리텐드 투 워크(Pretend to Work·일하는 척하기)’ 사무실에 출근한다. 지난해 운영하던 음식 사업이 실패한 뒤 집에만 머물던 그는 우연히 SNS를 통해 ‘가짜 직장’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저우 씨가 출근하는 이 모형 사무실에는 다섯 명의 ‘동료’가 더 있다. 그는 “아침 8~9시에 나와 밤 11시까지 있을 때도 있다”며 “혼자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여기선 친구도 생겼고, 마치 하나의 팀으로 함께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12일(현지시간) 중국 청년 실업자들 사이에서 돈을 내고 ‘일하는 척’하는 현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가짜 사무실을 제공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 경제와 고용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나타났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6월 청년 실업률은 14.5%에 달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청년들이 집에만 머무는 대신, 돈을 내고서라도 사무실에 나가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직장’은 선전, 상하이, 난징, 우한, 청두 등 중국 주요 도시 전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컴퓨터, 회의실, 인터넷이 기본 제공되며, 하루 이용료는 보통 30~50위안(약 5803원~9671원)이다. 일부 사무실은 점심, 간식, 음료까지 제공한다.

둥관시에서 ‘가짜 직장’을 운영하는 30세 A씨는 BBC에 “제가 파는 건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품위’”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청년들은 구직 활동을 하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한다.

지난 4월 문을 연 이 사무실은 한 달 만에 좌석이 가득 찼고, 현재는 입주 신청을 받아야 할 정도다. 이용자 중 40%는 막 졸업한 대학생들로, 상당수는 부모나 학교에 인턴 증빙 사진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나머지는 전자상거래 종사자, 온라인 작가 등 프리랜서다.

상하이에 사는 23세 탕샤오원 씨 역시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지만 정규직을 구하지 못했다. 그의 학교는 졸업 1년 내에 취업 계약서나 인턴 증빙을 제출하지 않으면 학위증을 주지 않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는 ‘프리텐드 오피스’에서 촬영한 사진을 학교에 제출했고, 실제로는 하루 이용료를 내며 소설 집필로 용돈을 벌었다. 그는 BBC에 “어차피 가짜라면 끝까지 가짜로 하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짜 출근’ 현상을 단순한 장난으로 보지 않는다. 크리스천 야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교수는 “경제 전환기와 교육·노동시장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청년들이 본격적인 취업 전 다음 단계를 고민하거나 머무는 ‘전환기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분석했다.

비아오 샹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도 “기회 부족이 만든 좌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거리를 두며 숨 쉴 공간을 찾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