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발생한 독도 소방 헬기 추락 사고를 둘러싼 DB손해보험과 소방청 간의 보험금 지급 분쟁이 결국 국내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약 9000㎞ 떨어진 영국까지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의 조정안을 거부한 DB손보가 ‘항공보험의 본고장’에서 시비를 가리겠다며 영국에서 중재 절차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12일 보험업계와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DB손보는 소방청과 체결한 항공보험 계약의 약관 내용을 근거로 영국 중재기관에 임의중재를 신청하고 소방청에 이를 통보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DB 측으로부터 한 달쯤 전 법무법인을 통해서 영국 중재원에 임의중재를 신청했다는 통지를 받았고, 우리 측에서도 법률 검토를 거쳐 대응하겠다고 답변한 상태”라고 밝혔다.
앞서 2019년 8월 소방청과 DB손보는 소방 당국이 보유한 헬기들에 대한 항공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갈등은 같은 해 10월 31일 소방 헬기가 독도 인근 해상에서 추락하며 시작됐다. 보험금을 지급하려면 우선 해당 사고의 원인이 기체 결함 등 지급 면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DB손보의 입장이었다. 4년 후인 2023년 11월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결론지으며 DB손보는 결국 약 374억원의 보험금을 법원에 공탁하게 됐다.
하지만 4년에 걸친 ‘늑장 지급’이 또 다른 갈등을 불렀다. 소방 당국은 DB손보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급을 미루다가 불필요하게 보상이 늦어졌다며 상법상 법정이율(연 6%)을 적용해 약 100억원 규모의 지연 이자까지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DB손보는 항사위의 결정을 기다린 것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적법한 절차였다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양측의 분쟁조정에 돌입한 금감원은 지난 4월 DB손보가 소방청의 약 78억원의 지연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조정안을 도출했다.
DB손보는 이 조정안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양측의 항공보험 계약이 표준약관으로 준용한 영국산 로이드 보험 약관이 ‘분쟁이나 의견 차이는 런던에서 중재를 통해 해결한다’고 규정한 데 착안해 영국에서 판단을 받아 보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영국·미국 등 해외에서 이뤄진 중재 결정도 국내서 승인 절차를 거치면 판결에 준하는 법적 효과를 갖는다”며 “사안이 사실상 재판 단계로 넘어간 만큼 금감원이 개입할 여지는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결국 장기간에 걸친 법적 공방전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소방청은 조만간 법률 검토를 통해 영국서의 중재 절차에 대한 협조 여부와 별도의 청구 소송 제기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DB손보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앞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는 사실 외에는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