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경기 시흥의 한 오피스텔 원룸에서 전세로 거주하던 20대 김모 씨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뒤늦게 확인한 결과 임대인은 이미 출국해 잠적한 중국인이었다. 김 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증 이행을 신청했고, 이사 준비 등을 거쳐 당초 퇴거시점보다 반 년이나 지나서야 보증금을 겨우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인, 미국인 등 외국인 집주인이 연루된 전세사기 피해가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후 해외로 도피한 외국인 집주인에 대해서는 채권 추심이 어려워 정책금융기관이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대위 변제해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이 증가 추세라 이러한 피해는 앞으로 더 확산할 우려도 크다.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임대인이 연루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 누적 피해 규모는 2021년 5억원에서 2024년 143억 원으로 늘었다. 피해 건수도 같은 기간 3건에서 62건으로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1~6월)에도 신규사고 9건이 발생해 피해액 14억원이 추가됐다. 피해 지역은 주로 서울(2건)·인천(2건)·경기(3건) 등 수도권에 집중됐으나, 부산과 광주에서 각각 1건씩 집계 이래 처음으로 사례가 확인됐다.
2022년 말부터 본격화한 전세보증사고는 지난해 정점을 찍은 뒤 올해 들어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HUG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76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감소했다. 지난 6월 전세보증 사고 금액은 793억원으로 2022년 7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월간 1000억원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특히 외국인 집주인이 연루된 전세사기는 최근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입이 늘고 있어 향후 유사 피해 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외국인은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에서 취득한 아파트 중 수도권 비중이 건수 기준 62%, 금액 기준 81%에 달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에 전체 건수의 약 40%가 집중됐다.
현재 국회에는 외국인의 투기성 매매를 겨냥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 표류 중이다. 현행법상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완화된 대출 규제를 적용받고 있어 내국인과의 ‘역차별’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염 의원은 “외국인 보증사고의 건수가 비록 적은 수치이나 전체 보증사고 비율의 감소세만큼 줄어들지 않고 있어 국내에서 벌어지는 전세사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라며 “수도권에 피해가 집중돼 있지만 부산·광주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새로운 지역 이슈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