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광장서 펼쳐진 무언극…‘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것’

입력 2025-08-12 00:03
최근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국제선교단체 ‘유러피언 이니셔티브(EI)’ 청년 20여명이 한 줄로 서서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무언극을 펼치고 있다.

최근 한여름의 열기로 가득했던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14세기 고딕 양식이 고스란히 남은 구시청사 건물 옆 광장.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돌길 한가운데 일렬로 선 청년 20여명이 길 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 멜로디 속에 말없이 이어진 강렬한 몸짓과 표정은 시끌벅적한 광장의 공기를 묵직하게 만들었다. 허공을 움켜쥐다 허탈하게 무릎을 꿇은 이, 양손으로 무언가를 부여잡고 탐욕에 사로잡힌 듯 울부짖는 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거나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린 채 깊은 고통을 표현하는 이들이 서로 부딪치고 밀쳤다.

억눌리고 절망에 갇힌 인간 군상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인가 싶었는데 무대 한쪽에서 하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두 팔을 벌리며 등장했다. ‘예수’였다. 그의 등장으로 무언극의 흐름이 바뀌며 광장은 200여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웃고 춤추는 복음 축제의 무대가 됐다. 공연을 마치고, 연기를 하던 한 청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입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의 이야기이자, 거기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복음과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어 퍼포먼스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관객들 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독교 본산인 유럽의 한복판, 종교개혁의 선구자 격인 얀 후스의 기념비가 서 있는 광장에서 말씀 전도를 펼친 이들은 미국 텍사스에 본부를 둔 국제선교단체 ‘유러피언 이니셔티브(European Initiative·EI)’ 소속 청년들이다. 40일간 유럽 주요 도시를 돌며 드라마와 찬양 등으로 복음을 전하는 ‘Go40’ 사역의 일환이었다.

공연을 마친 뒤 복음에 마음을 연 한 관객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합심기도하는 EI 청년들의 모습. 오늘쪽은 그랙 스트레인지 목사가 기도해준 관객에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는 모습. EI 제공

이 사역을 이끈 EI 미국 본부 개발이사 그레그 스트레인지(53) 목사는 “한때 세계 기독교의 심장이던 유럽이 지금은 가장 영적으로 메마른 대륙이 되었다”면서도 “여전히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우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날 공연을 본 한 젊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오늘 무언가 느꼈고, 하나님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 팀과 함께 기도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면서 “이러한 한 영혼의 변화가 우리의 사역 이유이자 열매”라고 강조했다.

거센 세속화 물결을 겪어 온 유럽을 향한 선교 움직임이 확산하며 그 방식과 주체가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의 자원봉사 선교대원이 함께 하는 EI도 그런 사례다. 이번 Go40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대만에서 활동하는 청년도 있었다. 이미 1987년 말 유럽 복음화 비전을 품은 국제선교단체 OM선교회는 매년 여름방학마다 유럽을 향한 대규모 아웃리치를 벌인다. 올해도 몰도바,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비롯해 독일과 영국 등에서 현지인과 이민자 등 소외계층을 섬기는 활동을 진행했다.

최근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국제선교단체 ‘유럽이니셔티브(EI)’ 청년들이 무언극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교회 안에서도 유럽선교를 향한 적극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레인지 목사는 “유럽 곳곳에서 한국 단기선교팀들을 자주 만나는데 한국교회가 기도와 선교에 헌신적인 민족이라는 걸 현장에서 생생히 체감한다”며 “유럽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와 동참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유럽위그노선교연구원 대표 성원용 선교사는 11일 전화통화에서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하던 유럽은 이제 자타가 인정하는 선교지가 됐다”면서 “서구 교회 안에서도 자신들의 지역을 선교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며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Church)’이 등장하게 됐다.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 곳곳의 교회들이 유럽비전트립을 다녀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 선교사는 다만 “2000년 기독교 역사와 500년 개신교 역사를 지닌 유럽의 현재는 ‘후기 기독교 사회’인 만큼 이들을 향한 선교는 기존 교회와 동반자가 되어 잠든 신앙을 일깨우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럽을 향한 선교는 양적 확대만이 아닌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는 “디아스포라 교회가 현지 교회를 돕고 국제 교회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감당할 때 유럽 선교는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라하(체코)=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