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역 광장 한쪽에서 ‘실로암’이 울려 퍼졌다.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산타 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으며 찬양한 건 백발이 성성한 80~90대 목사들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등 손 푯말을 든 원로목사들 옆으론 노숙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국원로목사총연합회(총재 김호일 목사)와 ㈔한국노숙자총연합회(대표 이주태 장로)가 이날 개최한 ‘원로목사 여름산타 노숙자 초청 선물 및 구제금 전달식’에 참여한 이들이다. 17개 지역, 1800명의 은퇴 목회자 모임인 한국원로목사총연합회 소속 목사 50명과 노숙인 500여명이 현장에 참석했다.
행사는 찬양과 소외계층과 노숙인을 위한 기도 등 예배로 시작했다. 김호일 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과 밥을 나누고 함께 눈물 흘리셨던 예수님을 기념하는 자리”라며 “‘여름산타 행사’는 단지 선물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위로를 전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원로목사들이 준비한 구제금과 생활용품은 하얀 모자를 쓴 노숙인 ‘반장’들에게 전달됐다. 이주태 장로는 “서울의 구마다 노숙인 대표인 반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장은 원로목사의 동역자와도 같다고 한다. 원로목사들은 이들과 함께 5년째 종로5가 인근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과 예배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토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는 ‘한국노숙자교회’도 세웠다.
한여름 무더위에 가장 취약한 계층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서울역 인근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도 이어졌다. 온누리교회 마포공동체 ‘마가다락방’과 온누리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서울역희망공동체’는 함께 ‘이웃에게로 더 가까이 여름 아웃리치’(마 25:40)라는 사역을 펼쳤다.
서울역희망공동체는 온누리교회와 타 교회 성도들로 구성돼, 거동이 불편하거나 외롭게 지내는 쪽방 주민을 방문해 말벗이 되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어버이날, 무더위·혹한기, 성탄절 등 절기마다 이웃을 찾아가고 있다. 2019년 시작된 이 봉사는 코로나19 기간 공식 활동은 잠시 멈췄지만, 개별 방문은 계속됐다. 2023년 4월부터는 서울 용산구 엘림하우스에서 공식 봉사를 재개했다.
이날 봉사는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엘림하우스에서 예배와 봉사 안내교육으로부터 시작했다. 이후 참여자 30여명은 2인 1조로 나뉘어 17가구를 방문했다. 에어컨 청소, 소화기 점검, 말벗 봉사는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은 “여름철 쪽방촌 주민들의 고독사와 외로움 문제가 심각하다”며 “소외된 곳을 직접 찾아가 필요한 도움을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이번 사역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다. 온누리교회 성도로 가족과 온 배우 권오중(54) 집사는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는 분들은 웃음과 평안을 지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초등학생 봉사자 박정안(12)군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어르신 모습에 저도 최선의 섬김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홍순철(83) 장로도 “쪽방 주민들이 기꺼이 맞아 앉을 자리를 정리해주고 함께 대화를 나눌 때 감동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