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훈(가명·66) 권사는 2022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뒤 죽음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백혈병 말기에 접어든 부친이 적극적 치료 대신 완화 치료를 선택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였다.
“죽음은 나이 들어 준비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일이란다.” 김 권사는 이후 이 말을 자녀들에게 되풀이했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천국 소망 안에서 준비하는 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는 늘 제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품으로 가는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이같이 밝혔다.
세대를 넘는 ‘죽음 준비’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지는 이제 특정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의 과제가 됐다. ‘좋은 죽음’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삶의 일부’라는 응답이 89%에 달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84%)는 답변도 높게 나타났다. 세대 구분 없이 죽음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응답자의 92%가 ‘죽음이나 웰다잉 교육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답했다. 생애 말기 준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두지 않고 사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교회 내부에서도 관련 교육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서도 ‘교회에서 죽음에 관한 강의나 교육이 열린다면 배우고 싶다’는 응답이 78%에 달했다. 2022년 조사(64%)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기대수명 연장과 함께 노후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앙 안에서의 웰다잉’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죽음, 준비하지 않으면 당한다?
죽음에 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속에 교계는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서울신대(총장 황덕형) 신학전문대학원은 국내 최초로 ‘기독교 웰다잉 최고위 과정’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1기에 이어 올해 2기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과정은 4주간의 신학적 강의와 9주간의 실무 교육으로 구성된다. 호스피스·연명의료·말기 환자 돌봄·애도 상담 등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한다.
강의를 기획한 하도균 교수는 이날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맞닥뜨렸을 때 당할 수밖에 없다”며 “신앙적으로는 죽음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목회자들도 이번 과정을 통해 강단에서 죽음을 어떻게 가르칠지,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유가족 위로 방법 등을 배우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수서교회(황명환 목사)는 매년 ‘죽음 세미나’를 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 비전을 세우는 것이 건강한 가정과 교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취지다. 세미나와 함께 논문·에세이 공모를 진행해 교인들이 자신의 장례와 신앙 고백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유산기부 운동도 활발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 일부를 선교·구제·교육에 남기는 것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휴먼브리지(대표 김병삼 목사)는 유산기부 후원자 그룹인 ‘브리지소사이어티(Bridge Society)’를 출범하고 생전 유언 공증을 통한 지정 기부를 장려한다. 기부금은 국내외 빈곤층 지원과 긴급구호 등에 쓰인다.
"성경적 죽음 위한 강단돼야"
전문가들은 웰다잉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에서 관련 설교나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력 존엄사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성경적 관점의 죽음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교회에는 고령 인구가 많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며 “죽음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피날레이자 중요한 담론”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인생은 방자해지고, 결론이 없다고 여길 때 삶이 바르지 못해진다”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