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등원한 지 5년이 됐는데 통상적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활동은 첫 1년 정도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론 선거 준비와 당직의 연속이었죠.”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중순 대통령 특사단의 일원으로 프랑스에 다녀왔다. 국회의원 생활 5년 만의 첫 해외 출장이었다. 그는 2022년 8월 선출된 이재명 신임 당대표의 비서실장에 임명됐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24년 8월 당 전략기획위원장이 됐다.
20대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졌던 후보가 사상 두 번째로 민주당계 정당 대표를 연임한 다음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천 의원은 줄곧 지근거리에서 이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저서 ‘이재명의 시간’을 두고 “제 개인의 활동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 천 의원을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인터뷰 당일 천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피습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정치적 암살 테러는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대통령의 피습으로부터 1년 7개월간 꾸준히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는데.
“사건 당일부터 석연찮은 지점이 너무 많았다. 피습 현장은 직후 물청소됐고, 제기된 의혹에 비해 공범이나 배후 수사는 미진했다. 최근에는 국가정보원 내부 보고자료를 통해 사안을 축소·은폐하려 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정치적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암살 테러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지나갔다. 이번에도 그렇게 넘어간다면 제2, 제3의 시도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걸린 문제다.”
-정치적 양극화가 테러로 이어진다는 진단이 많다.
“이 대통령이 대표 시절 검찰정권에 의해 오랜 기간 탄압받으면서 악마로 그려졌다. 반복적 기소, 혐의점에 대한 보도가 축적되며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다. 내란 종식과 위기 극복이라는 화두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그 이미지는 아직 해소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책의 예상 독자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로 상정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분들, ‘이런저런 판단이 잘 안된다’ 하는 분들. 실제 생활 속에서 부딪히며 느낀 이재명은 어떤 사람인지 쉽게 풀어 소개하려 했다.”
-혹자는 본인을 이 대통령의 대표 시절 ‘레드 팀’으로 분류했다.
“이 대통령은 균형잡힌 의사결정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어떤 개인의 의견이나 다수의 의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소수 의견도 똑같이 비중 있게 들으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사회적 관심도가 높고 대립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그렇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제 방식을 선택할 때 당시로서 소수의견이었던 연동형을 주장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론 이 대통령도 연동형을 선택했지만, 내 의견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다수의견 쪽이었다면 이 대통령은 또 다른 이들에게 소수의견을 듣고자 했을 것이다.”
-대선 캠페인을 관통한 ‘중도실용주의’도 이 대통령의 개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가.
“개인 성향과 시대적 환경이 맞물려 전략화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실용만큼 정치인 이재명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없다. 내가 속한 진영, 대변하는 가치보다 실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태도다. 이 장점을 살려야겠다고 판단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좀더 분명하게 그런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시대적 상황까지 겹쳤다. 비상계엄을 거치며 국민의힘이 극우화했고, 그대로 놔뒀다간 합리적 보수까지 그리로 쓸려가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을 더 넓혀가겠다는 것이 소위 중도보수론, 중도실용주의의 전략적 요체다.”
-같은 기조가 대선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나.
“현 정부의 실용적·문제해결 중심적 면모는 정권 교체 후 여러 번 드러났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집권하면 사법·행정·의회권력을 장악하고 독주할 거라고 했지만, 이 대통령은 집권 첫날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인사 측면에서도 전임 정부 인사를 과감히 채용하며 공직사회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고, 부동산 문제도 이념적으로 대응하기보단 가계부채관리대책을 통해 딱 필요한 핵심적 정책으로 시장을 관리했다.”
-당내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주장도 나오는데.
“중도실용적 관점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과 내란을 두고 타협하는 것은 별론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를 깨는 행위를 용인해서야 되겠나. 국민의힘 내부적으로도 얼마나 답답하겠나. 끌려가는 것일뿐,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은 극우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정당해산심판 청구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유불리로 따진다면 오히려 정당 해산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당에 불리한 일일 수 있지만, 역사적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국민의힘을 해산시키면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여론이 사라지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명확히 내려져야 한다는 취지다. 시대에 따라 그같은 평가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줄어들 순 있다. 그러나 그때문에 평가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전 전략기획위원장으로서 당이 향후 조심할 지점을 꼽자면.
“사안을 너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보다 전체적인 흐름,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가령 양도소득세 문제를 예로 든다면, 조세정의 관점에선 충분히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코스피5000시대를 지향하고, 자산시장의 개념을 바꿔놓겠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관성이 아쉬운 측면이 있다. 각론의 정의와 타당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논의겠지만, 전체적 맥락과 흐름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