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거치며 급성장한 향수 시장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국내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며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세가 거세지는 한편, K뷰티 흐름에서 다소 비켜있던 K향수 브랜드들도 세계 무대로 발걸음을 넓히는 모습이다.
11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달 향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신장해 올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올해 상반기 향수 매출이 21.2% 늘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는 주요 향수 브랜드의 1~7월 평균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도 딥티크·르 라보·조 말론 등의 향수가 인기 상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국내 향수 수요가 확대하자 글로벌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웨덴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는 지난해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판권 계약을 종료하고 직진출에 나섰다. ‘일본판 탬버린즈’로 알려진 시로(SHIRO)는 지난 4월 서울 성동구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K뷰티 성장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K향수에 대한 해외 수요도 커지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향수 수출액은 3947만1000 달러(약 549억)로 전년 대비 29.8% 늘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동·오세아니아·중남미 지역 향수 수출액은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일본 큐텐에서도 지난 1~3월 K향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K디퓨저·방향제 등은 10배 이상 급증했다.
K향수 성장을 이끄는 주역은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중소 규모 니치 브랜드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탬버린즈’는 체인을 단 핸드크림 등 독창적인 디자인과 블랙핑크 제니를 모델로 한 마케팅으로 국내외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2020년 348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646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고, 지난해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에 이어 지난달 시부야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하며 글로벌 거점을 확대했다.
2019년 시작된 ‘논픽션’은 세련된 향에 ‘외할머니 집에 온 듯 따뜻한’ 한국적 감성을 입혔다. 2020년 55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지난해 479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홍콩, 올해는 도쿄에 시그니처 스토어를 잇따라 열었다. 론칭 2년 만에 300억원 매출을 달성한 ‘본투스탠드아웃’은 ‘찐쌀’과 ‘매니큐어’ 등 실험적인 향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런던 해러즈와 파리 사마리텐 등 고급 백화점에 입점했으며, 지난해 매출의 3분의 2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
엑스퍼트마켓리서치(EMR)는 국내 프래그런스 시장 규모가 지난해 4억5643만 달러(약 6351억원)에서 2034년 8억4083만 달러(약 1조17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한 관계자는 “향수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고 브랜드 헤리티지가 중요한 만큼 신생 브랜드의 성공이 쉽지 않다”면서도 “K향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은 초기 단계인 만큼 K뷰티가 쌓아온 신뢰와 홈 프래그런스·바디케어 등 향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확대와 맞물려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