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성공회 “식민지배는 죄…남북분단도 우리 책임” 광복 80주년 선언

입력 2025-08-10 15:53 수정 2025-08-11 14:08
2025년 8·15 한일성공회 공동선언문. 대한성공회 제공

일본성공회가 한국 광복 80주년을 맞아 과거 식민지배를 ‘죄’로 고백하고 그로 인해 한반도 분단이 일어났다는 책임까지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확인됐다. 오는 15일 대한성공회와 일본성공회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선언문에 이같은 내용이 담기고, 한국성공회는 이에 ‘용서와 사랑’으로 화답한다.

일본성공회는 10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2025년 8·15 한일성공회 공동선언문’에서 “과거 한반도에 가한 식민지 지배의 죄를 깊이 회개한다”며 “우리의 조상들이 한반도의 형제자매들에게 씌운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남북분단을 잊지 않으며, 주님의 용서하심 안에서 진정한 화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성공회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는 말씀처럼, 우리 양국의 성공회는 용서와 사랑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양국 성공회의 이같은 공동선언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선언 이후 6년 만이다. 한일성공회는 선언문에서 “한국의 광복과 일본의 패전 80주년을 맞는다”며 “이 뜻깊은 날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화해와 평화의 소명을 되새기며, 한일성공회 주교회의 공동 메시지를 전한다“고 전했다. 이번 선언문은 과거사에 대한 참회를 시작으로 현재의 국제 정세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약속을 담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대한성공회와 일본성공회 성직자들이 지난해 10월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한일성공회 선교협력 40주년 기념대회'의 일환으로 4·3 사건 희생자 추도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다. 대한성공회 제공

과거사에 대한 참회는 한일성공회의 41년에 걸친 교류의 연장선에 있다. 대한성공회에 따르면, 양국의 교류는 1984년 공식 협력을 시작할 당시부터 ‘한국 측의 고통과 한을 함께 나누고, 일본의 잘못에 대해 사죄와 회개의 마음으로 털어놓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진행됐다. 이러한 교류는 청년 역사기행, 인권 토론뿐 아니라 한국인 성직자의 일본 파송, 제주 ‘우정의집’ 공동 건립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한일성공회 교류 40주년 대회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예배를 공동으로 열고, 일본의 침략이 한반도 분단과 4.3사건의 고통으로 이어졌음을 고백했다.

선언문은 ‘가자지구의 제노사이드’,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 세계적인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평화의 사명을 일본의 현실에 적용하며, 최근 신군국주의 움직임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선언문은 일본 평화헌법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귀한 선물”로 규정하고 “이 평화의 정신을 소중히 지키며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한일성공회 교류 40주년을 맞아 제주에 건립된 '한일 우정의집'에서 양국 성직자들이 축복식을 열고 있다. 대한성공회 제공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양국 성공회는 평화의 동반자로서 미래를 향한 다섯 가지 실천 계획을 약속했다. 선언문은 ‘사랑의 실천’을 위해 서로 기도하고 섬기며, ‘진리의 추구’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정죄보다는 용서로 응답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평화의 증거’로서 군사적 대결보다 대화와 협력에 헌신하고, ‘통일의 기도’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동반자가 되며, ‘희망의 나눔’을 위해 “젊은 세대들과 ‘여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기쁨을 경험하도록 교류와 교제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성공회 관계자는 “이번 80주년 선언은 일본의 신군국주의 움직임과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 전 지구적 기후·환경위기라는 시대적 과제에 응답하려는 것”이라며 “이번 선언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참회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80주년이라는 중요한 시점에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는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