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전쟁에선 승리했고, 광란의 파티가 시작됐어/ 맨해튼은 완전히 들썩이고 모두가 이 파티에 초대받았지/ 파티는 어디야? 날 데려가 줘.(후략)”
일주일간의 프리뷰를 거쳐 지난 8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11월 9일까지) 내한공연은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쇼뮤지컬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총 155분(인터미션 20분)의 공연 시간 내내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 눈부신 의상과 춤, 특수효과 등으로 ‘재즈의 시대’로 불린 1920년대의 화려함을 구현하고 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작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원작은 가난 때문에 헤어진 상류층 출신 연인 데이지 뷰캐넌을 잊지 못한 제이 개츠비가 부를 축적한 후 남의 아내가 된 그녀를 되찾으려는 이야기다. 1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뉴머니’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이 사는 웨스트 에그와 ‘올드 머니’로 불리는 전통적 부자들이 사는 이스트 에그라는 가상공간을 오가며 그 안에 담긴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성을 그렸다.
뮤지컬은 국내에서 ‘드라큘라’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가 되어 지난 2023년 11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서 막을 올렸다. 마크 브루니 연출,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 케이트 케리건 대본, 네이슨 타이슨 작사, 폴 테이트 드푸 무대디자인, 린다 조 의상디자인 등 현지 창작진이 참여했다. 올해 영국 런던에 이어 한국 서울에서도 막을 올리며 3개국에서 동시에 공연하는 유례없는 사례가 됐다.
원작 소설의 큰 줄거리를 따라가지만,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세부적인 구성과 캐릭터의 해석 등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개츠비의 이웃집에 이사 온 데이지의 친척 닉 캐러웨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점은 원작과 같다. 그러나 뮤지컬의 특성상 주인공들이 노래로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는 만큼 캐러웨이의 시선은 극 중 느슨한 편이다. 또한, 원작에선 캐러웨이가 데이지의 친구인 골프 선수 조던 베이커와 잠시 교제하다가 성격 차 때문에 이별하는 데 비해 뮤지컬에선 결혼까지 약속할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된다. 여기에 뮤지컬에선 톰 뷰캐넌의 불륜 상대인 유부녀 머틀 윌슨이 원작과 달리 임신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차이는 극 중 갈등을 심화하는 한편 개츠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점 차이를 또렷하게 구분 짓는 기능을 한다.
19인조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세트 못지 않게 공연 내내 사운드의 향연을 펼친다.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열리는 1막의 화려한 파티는 중독적인 멜로디의 넘버 ‘파티는 불타오른다’(The party's roaring on)에 맞춰 앙상블의 역동적 군무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2막의 파티에서도 넘버 ‘라디다 위드 유’(La Dee Dah With You)에 맞춰 개츠비와 캐러웨이, 앙상블 등이 신나는 탭댄스를 선보이는 장면은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이번 내한공연의 출연진들, 특히 주역들의 가창력이 훌륭했다. 개츠비를 연기한 매트 도일은 ‘그녀를 위해’ ‘차 한 잔만’ 등의 넘버를 감미롭고 애절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데이지에 대한 순수하면서도 맹목적인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또 데이지 역의 센젤 아마디도 탁월하게 제 몫을 해냈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등의 넘버들을 폭발적인 성량으로 소화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도일과 함께 부른 이중창 ‘나의 녹색 불빛’은 관객의 많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성을 화려한 무대 세트와 서정적인 노래로 잘 표현했다. 작품은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허영과 부조리를 비판하며 꿈과 사랑의 좌절을 그렸지만, 2025년 한국도 물질 만능주의와 계층 갈등 등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하며 볼 수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