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정 기간, 법조타운이 모처럼 조용하다. 휴가 기간이지만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편한 복장으로 사무실에 들렀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면을 작성하던 중 누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절박한 표정으로 상담이 가능하냐고 되묻는다. 휴정 기간이어서인지 상담받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뒤로 물리고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한 후 몇 년 전에 농사를 지을 생각으로 고향에 내려왔다. 사업 실패로 다 잃은 상태라 일단 동네 선배에게 농사지을 땅을 부탁하였다. 동네 선배는 자신의 사촌이 소유한 땅이 있는데 비어있다면서 우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라고 호의를 베풀었다. 그는 이 땅에 대추나무를 심었다.
몇 년 후 갑자기 땅 주인이 나타나서 누구 맘대로 내 땅에 대추나무를 심었느냐면서 내 땅에서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가 동네 선배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더니 땅 주인은 사촌에게 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도 좋다고 한 바 없다고 한다. 동네 선배도 그때가 돼서야 사촌이 땅을 놀리고 있어서 물어보지 않고 빌려주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너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수확 시기가 다 된 대추라도 따서 팔아보기로 했다. 며칠 동안 열심히 대추를 땄고, 마침 대추를 산다는 상인이 나타나서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팔았다. 그러자 땅 주인이 나타나서 왜 남의 물건을 훔치느냐며 대추 판 돈을 돌려달라고 한다.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단다.
그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땅 주인이 아니라 그가 묘목을 사서 심은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따서 팔았는데 왜 땅 주인은 그가 대추를 훔쳤다고 말한단 말인가. 그래서 당당하게 땅 주인의 요구를 거절했더니,땅 주인은 그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그는 경찰에서 그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결국 절도죄로 기소되었다.
한참을 설명하던 그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안타깝지만, 그가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땅 주인의 허락을 얻어서 대추나무를 심었다면 대추나무는 그의 것이 되겠지만, 허락을 얻지 못했다면 대추나무는 땅 주인의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이게 어려운 말로 민법상 ‘부합(附合)’의 법리라고 설명해 줬다. 대추나무는 부합으로 인해 땅 주인의 소유로 되었는데, 그가 땅 주인 소유의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서 팔았으므로 절도죄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억울해했지만, 대추 판 돈을 땅 주인에게 주고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으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가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곧 입추인데, 오늘은 유난히 덥게 느껴진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