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국방비 증액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지지를 요구하는 안을 검토한 정황이 미 정부 내부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현지시각) 한·미 협정의 초기 초안(draft)을 인용해 미국이 협상 당시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6%에서 3.8%로 증액하고, 방위비 분담금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인상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양국이 2026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11억 달러로 합의한 사실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분담금을 2배 가량 증액하려 한 셈이다.
초안에는 또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북한 억제를 계속하는 동시에 중국 억제를 더 잘하기 위해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flexibility for USFK)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문서가 8페이지 정도로 “실제 협상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다뤄졌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서는 미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의 요청에 따라 다른 부처에서 제출한 제안들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5월 1일 초안’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손 글씨 표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달 말 한미 무역 합의 발표 때 방위비 문제 등 안보 현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분담금 증액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당 문서에는 한국 외에도 여러 국가에 대한 요구사항이 담겼는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내용이 다수였다. 이스라엘에는 해안 도시 하이파의 중국 국영기업 운영권 철회를, 호주에는 중국계 기업이 장기 임차 운영 중인 다윈항의 운영권 재검토를 요구했다. 캄보디아에는 서남부 해군기지에서의 미 해군 정기 방문·훈련 허용과 중국군 배치 금지, 마다가스카르에 중국의 군사 기지 설립과 군사협력 확대 불허를 요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국가 안보 목표 달성을 위해 관세 사용을 확대했다”며 “행정부 관계자들은 무역 협상을 만성적인 미국 무역 적자 감축을 넘어 훨신 더 광범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회로 여겼다” 고 전했다. 트럼프는 최근 인도를 향해서는 러시아 석유 구매 중단을 요구하며 50%의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