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인 한국어로 런던 무대에 선다는 것이 정말 기뻐요. 10년 전 런던에서 데뷔할 때 언젠가 한국어로 공연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뮤지컬 배우 김수하(31)가 10년 만에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를 다시 밟는다. 현재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31일까지, 이하 ‘스웨그에이지’)으로 다음달 8일 런던 질리언 린 시어터에서 영국 관객과 만나게 됐다. ‘스웨그에이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 영미권 중기 개발 지원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낭독공연을 가진 데 이어 올해 콘서트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데뷔작인 ‘스웨그에이지’로 런던에 다시 가게 된 것 그리고 콘서트 오프닝에서 영국 관객들에게 한국어로 해설을 하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수하는 지난 2015년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주역을 맡았다. 국내 대학 재학 중 오디션을 통해 ‘미스 사이공’ 영국 프로덕션의 앙상블 겸 여주인공 킴의 언더스터디(대체 배우)로 캐스팅된 그는 가창력과 연기력을 인정받아 무대에 선 지 한 달도 안 돼 킴을 맡기 시작했다. 약 10개월간 킴 역을 30회 이상 소화한 그는 이후 유럽 투어와 일본 프로덕션에선 처음부터 주역으로 관객을 만났다.
김수하는 “‘미스 사이공’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기 때문에 대학생 시절 경험을 쌓을 겸 일본 프로덕션 오디션에 응모했다. 그런데,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영국 크리에이티브팀 관계자들의 추천으로 웨스트엔드 프로덕션 오디션을 보고 합류하게 됐다”면서 “처음엔 영국 연출가와 연습실에서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영어를 못 했다. 그래도 통역사, 발음 교정 코치, 보컬 코치 등의 도움을 받으며 훈련한 끝에 공연에서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연출가 등 스태프의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과거 런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2019년 ‘미스 사이공’ 투어로 스위스에서 공연할 때 현 소속사이자 ‘스웨그 에이지’ 제작사인 PL엔터테인먼트의 송혜선 대표의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이며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는 시조가 금지된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백성들이 시조와 춤으로 자유와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김수하는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의 딸이면서도 세상을 바꾸려고 모인 비밀시조단 골빈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진’을 연기한다.
이날 라운드에 함께한 송혜선 대표는 “‘스웨그에이지’는 배경이나 의상 등 매우 한국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계층 간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는 동서를 가리지 않는 현실적인 이야기인 만큼 영국 관객에게도 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김수하는 “요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인데, 우리 작품엔 갓과 한복이 나온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상으로 전통과 현대를 섞은 한국 고유의 감각을 보여줄 수 있다”면서 “과거 영국에서 함께 공연했던 동료가 이번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는 현지 반응을 들려줬다”고 덧붙였다.
김수하는 국내 데뷔작이었던 ‘스웨그에이지’로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자신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렌트’의 미미, ‘하데스타운’의 에우리디케, ‘아이다’의 암네리스,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등 대작 뮤지컬의 주역으로 출연하며 한국 뮤지컬계의 차세대 스타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스웨그에이지’는 쇼케이스에서 초연으로 올라갈 때 작품이 많이 바뀌었어요. 초연 멤버로 참여하며 진의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제겐 의미가 남다른 작품입니다. 특히 한국 데뷔작이었던 이 작품을 통해 신인상을 받는 등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또 6년간 다섯 번의 시즌을 모두 참여한 만큼 이 작품의 성장에 책임감도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 런던 콘서트는 (국가대표처럼) 태극기를 두르고 공연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설 예정입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