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정든 마운드와의 이별을 앞둔 심경을 밝혔다. 오승환은 “아직 은퇴가 크게 실감나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는다”면서 “공을 완전히 놓고 있지는 않겠다. 마지막 경기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일 통산 549세이브를 수확한 그는 기회가 된다면 ‘550세이브’ 고지를 노려보겠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오승환은 7일 인천 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선수로서 참 복을 많이 받았다.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선수 생활 마지막에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삼성 구단의 은퇴 발표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종열 삼성 단장과 구자욱, 강민호, 원태인, 김재윤 등 동료 선수들이 참석해 오승환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했다. 이 단장은 “오승환과 선수 생활을 같이 했는데 은퇴를 한다.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은퇴 후 멋진 삶을 살도록 구단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민호는 “야구인 후배로서 마지막까지 멋진 야구 인생을 산 승환이 형을 잘 따라가겠다”고 전했다. 주장 구자욱은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지만 남은 기간 좋은 추억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재윤은 “선배님은 제 롤모델이자 우상이었다.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는 속마음을 전했다. 원태인도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선배님과 같은 팀에서 운동했던 시간이 영광스러웠다. 앞으로의 길도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자신에게 따라붙은 수많은 별명 중 마무리 투수 보직과 관련된 ‘끝판대장’ ‘돌직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마무리 투수로서 승리를 지켜내야 하는 매 경기, 매 순간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작고한 어머니를 언급한 오승환은 “제게는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승환은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겠다”며 “마무리는 잔혹하다. 선발투수나 타자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껄끄러웠던 타자로는 은퇴한 이대호를 꼽았다. 그는 “마무리 투수는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여러 후배 선수들이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길 바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은퇴를 선언한 소감은.
“사실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와 닿진 않는다. 선수로서 참 복을 많이 받았다.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선수 생활 마지막에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도, 여러 선수가 이렇게 하지 못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 구단에 감사하다. 21번이라는 숫자를 다시 생각해보니 제 선수 생활이 21년이더라. 구단과 팬들이 이 숫자를 뜻 깊게 만들어줬다. 삼성 최초의 투수 영구결번이라는 결과를 만든 건 팬들 덕분이다. 저를 향한 수식어와 별명들도 팬분들의 관심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나 순간이 있나.
“갑작스럽진 않다. 제가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정하게 됐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몸에 조금씩 이상을 느꼈다. 올 시즌 초부터 100%의 퍼포먼스를 낼 수 없겠단 생각이 들면서 은퇴를 고민했다.”
-은퇴 후 어떤 삶을 계획 중인가. 지도자 오승환을 볼 수 있나.
“아직 시즌 중이고 여기서 정확하게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간이 남았으니 구단과 사장, 단장님 등과 많은 얘기를 통해 은퇴 후 인생도 상의할 계획이다. 지도자는 제가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많이 공부하고 준비가 됐을 때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은 올 것 같다. 아직은 선수들과 호흡하는 게 좋다. 운 좋게 다양한 리그에서 쌓은 경험을 후배 선수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세이브가 있나.
“딱 떠오르는 건 400세이브를 달성했을 때다. 세이브가 팀의 1승을 지킨다는 의미가 가장 큰 거라서 별달리 의미가 깊은 세이브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도 400세이브가 기억에 남긴 한다.”
-선수 시절 가장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은.
“너무나 많은데, 마무리 투수로서 매 시즌,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블론 세이브를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블론 세이브가 팀의 순위 싸움에 치명적 결과로 작용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포수와 마음에 드는 별명을 꼽자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좋은 포수를 많이 만나서 한 명을 꼽기는 되게 힘들다. 진갑용, 강민호, 그리고 미국 시절 야디어 몰리나까지 좋은 포수들의 볼 배합과 능력 덕분에 제 기록들이 좋게 나타났다. 모든 별명들을 다 좋게 생각한다. 그래도 애정을 갖고 있는 건 마무리 보직에 어울리는 ‘끝판대장’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무기인 ‘돌직구’도 좋아하는 것 같다.”
-남은 시즌 공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나.
“지난주만 해도 퓨처스리그 경기를 뛰었다. 몸 상태는 지금 많이 좋아져서 공을 완전히 놓고 있지는 않을 거 같다. 한 경기라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경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겠다.”
-수많은 공을 던졌는데, 최고의 공 1개를 꼽을 수 있나.
“어떤 순간보다도 매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공이 생각에 많이 남는 것 같다. 오늘 하루 또는 큰 경기를 마무리 짓는 그 공이 기억에 남는다.”
-은퇴 결정에 은사 선동열 감독이 어떤 조언을 해줬나.
“큰 결정을 했다고 축하해주셨다. 롤모델로 삼았던 분에게 은퇴를 축하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야구선수로서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 감독님은 ‘앞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라’는 조언을 하셨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수생활 점수는 몇 점인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치면 21점 만점에 21점이다. 아쉬운 부분을 따지면 20점을 주겠다. 나머지 1점은 제2의 인생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은퇴 후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오승환이라고 하면 저런 마무리 투수가 있었다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무리 투수에 대한 회상을 할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 제 기록을 목표로 삼고 롱런을 하고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제2의 오승환을 꿈꾸는 선수들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후배가 있나.
“좋은 선수들을 제가 평가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지만, 박영현(KT 위즈), 김택연(두산 베어스), 조병현(SSG 랜더스), 김서현(한화 이글스) 등이 눈에 띈다. 불펜과 마무리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제 기록을 깰 선수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투수도 경쟁을 통해서 기록을 내고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리라 본다.”
-가장 껄끄러웠던 타자는.
“너무 많은데, 한 명만 얘기하면 삐치더라. 그래도 이대호다. 누구나 알다시피 ‘조선의 4번 타자’가 닉네임이었다. 덩치에 비해서 선구안이 좋고 예리했다. 장타력을 갖춘 선수라서 이대호는 항상 위험부담을 느꼈던 타자다. 국내에서 이대호를 따라갈 만한 타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는데, 앞으로 나올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좋은 선수였다.”
-가족에 감사 메시지를 전하자면.
“아버님과 어머님, 저희 형들과 아내가 있는데, 어머니는 올 시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이 자리를 못 보신 게 가장 기분이 그렇다. 올 시즌 제일 크게 와 닿은 부분은 항상 응원을 하시고, 경기를 마치고 첫 번째로 연락을 주셨던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게 가장 컸다. 저한테는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타격이 왔던 것 같다.”
-야구 예능프로그램도 향후 선택지에 포함돼 있나.
“오늘 아침만 해도 야구 예능에 나오고 있는 선수들, 후배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그 부분을 여기서 말씀드리긴 어렵고, 공을 완전히 놓은 상태가 아니라 추후에 생각해봐야겠다. 야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한미일 통산 549세이브인데, 하나만 더 했으면 좋겠단 생각은 없나.
“아직 공을 놓지 않았고, 시즌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다. 지고 있는 상황이든 세이브 상황이든 준비를 할 거다. 549보다는 550세이브가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한다.”
-마지막 경기, 마지막 공은 어떤 구종을 어떻게 던지고 싶은가.
“그걸 알려드리면 타자가 칠 텐데. 작년부터 난타를 많이 당해서 그건 비밀로 하겠다. 첫 공은 직구라고 말해서 타자한테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팀 승리가 먼저기 때문에 섣불리 말씀을 안 드리겠다.”
-직구 스피드를 유지한 비결이 있나.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선수들은 하루의 결과를 놓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긴 하더라.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좀 떨어지지 않나 싶다. 한 경기를 잘 했다고 해서 만족을 안 했으면 좋겠다. 반대로 연속적인 실수를 했을 때는 자기의 실력이 된다. 꾸준함이 결국 자기 실력이다. 루틴도 많이들 만드는 데 그 루틴 자체를 좋든 안 좋든 꾸준하게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라이벌 마무리 투수를 꼽자면.
“매해 달랐던 것 같다. 사실 제 스스로가 다른 팀 마무리 선수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했던 게 팀이 8회까지 이기고 있는 경기를 이기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었다. 라이벌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굳이 기록을 따지면 손승락 정도가 될 것 같다. 골든글러브를 탔던 것 같은데 그걸로 제게 많은 어필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에 지명됐을 때 세운 목표를 이뤘나.
“처음엔 패전 처리를 하는 투수라도 1군에 붙어있는 게 목표였다. 큰 목표를 잡고 야구를 해보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그럴 여유를 가질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2005년 당시만 해도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팀에 많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선수가 1군 무대를 뛰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라고 생각했다. 성적을 예상하거나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경쟁을 통해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그렇게 2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게 됐다. 작년만 해도 똑같은 마음으로 경기에 나갔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하게 해 왔던 것들이 21년 선수생활이 됐고, 좋은 기록을 남기게 됐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 건가. 마무리를 할 건가.
“다시 태어나도 야구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절대 마무리는 하고 싶지 않다. 선발투수나 타자를 하고 싶다. 마무리 투수는 정말 매 경기 결과에 잔혹할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것 같다. 타자나 선발투수도 그런 마음이 있겠지만 다른 포지션을 하고 싶은 욕심이 큰 것 같다. 아마추어 시절에 타자랑 선발도 해봤는데, 개인적 생각으로는 뭐든 마무리 투수보다는 나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해 달라.
“은퇴 실감이 나지 않아서 두서없이 얘기를 한 것 같다. 좀 더 준비를 해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팬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멋지게 할 시간이 있을 것 같다. 그때 더 멋지게 인사를 드리겠다.”
인천=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