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오세훈 지시로 만든 ‘비밀의 방’…화장대란 해소

입력 2025-08-07 16:00
지난달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신규 화장로 4기 설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내 화장로 증설 공사가 이달 완료됐다. 지난해 9월 착공에 들어간 지 11개월 만으로 서울시는 초고령사회 급증하는 화장 수요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7일 서울추모공원에 신규 설치된 4기의 화장로가 오는 18일부터 가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존 11기였던 화장로가 15기로 늘면서 하루 최대 59건이던 화장 처리 능력도 85건까지 가능해졌다. 불과 1년도 안 돼 서울추모공원 화장 처리 능력이 1.5배 가까이 확대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증설로 2040년까지 서울의 장례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전국적으로 화장장 부족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도 서울시가 이처럼 발 빠르게 화장로 신설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17년 전 서울추모공원 설계 당시 미리 확보해 둔 유휴 공간 역할이 컸다.

애초 서울시는 이 공간의 존재를 몰랐다. 화장장 신규 증설을 고려했었다. 실제 2021년 정수용 당시 복지정책실장이 이러한 계획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로 4일장, 원정 화장 등 ‘화장대란’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화장장 증설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대표적인 기피시설인 탓에 신규 부지 매입부터 주민 동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지금은 ‘기대시설’로 바뀐 서울추모공원도 부지 매입부터 완공까지 12년이 걸렸다.

해법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왔다. 정 실장의 보고를 들은 오 시장이 서울추모공원에 화장로를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다. 시장 1기 시절이던 2008년 화장 수요 증가를 염두에 두고 추후 화장로 증설에 대비한 공간을 확보해 뒀다고 했다.

최근 만난 오 시장은 “서울의 고령화 속도나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하는 장례 문화 추세를 봤을 때 화장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봤다”며 “서울추모공원 지을 때도 ‘오세훈, 너부터 태워주마’ 등 반대가 심했는데, 나중에 필요할 때가 돼서 다시 또 짓기보다는 이왕 지을 때 언제든 확장 가능하게끔 공간을 확보해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화장장 전경. 헌화의 의미를 담은 꽃을 형상화했다. 서울시 제공

17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공간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직원을 수소문한 끝에야 창고와 서고 등으로 방치돼 있던 ‘비밀의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착공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화장장 신축만큼은 아니지만 주민 반대가 따를 수 있었다. 실제 서울시는 2024년 총선 직후 착공을 추진했지만, 당시 서초구청장이 주민 반대가 클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역 주민 설득을 위해 서초구에 인근 저층주거지역의 건축 제한 일부 완화를 제안했다. 지역구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중재에 나섰고, 서초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증설 작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오 시장이 화장로 증설을 시급한 문제로 봤다. 해당 공간 자체도 오 시장 아니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이후 증설 과정에도 의지를 갖고 정치적 행정적 조율을 해나갔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부지 확보를 위한 추가 예산 투입 없이 이 공간을 활용해 각 2기씩 총 4기의 화장로를 증설할 수 있었다. 공사 기간 단축은 물론 화장로 1기당 설치비용도 신규 건립 대비 12분의 1 수준으로 절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인프라 관리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다”며 “선제적 공간 확보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한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