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역 인근 복합빌딩 3층. 도심 한복판, 상업시설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이 교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입구 벽면을 가득 채운 초록 이끼와 식물 위로 ‘ADELPHOI’라는 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카페인가 싶다가도 안으로 들어서면 단정한 강단과 십자가, 절제된 조명이 교회임을 암시한다. ‘아델포이(ADELPHOI)’는 헬라어로 ‘형제’·‘성도’를 뜻한다.
이 교회를 세운 임동현(46) 목사는 광고업계 출신이다. 대학 시절 각종 공모전 수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굴지의 대기업 광고회사에 입사해 고객사와 방송국, 매체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빠르게 경력을 쌓으며 높은 연봉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그 성공의 문턱에서 공허함이 밀려왔다.
“신앙은 있는데 생명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배는 습관이 되었고, 기도는 메마르기 시작했죠.”
변화의 계기는 아내였다. 선교를 준비하던 아내의 질문이 다시 신앙의 중심을 흔들었다. “복음이 당신 삶에서 실제입니까.” 그 물음이 삶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사명감을 깨웠다. 결국, 30대 초반 그는 광고업계를 떠나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며 사역자의 길을 준비했다.
강원도 양구, 인천 부평 등 외곽 지역 교회부터 서울 강남 충현교회(한규삼 목사), 관악 왕성교회(길요나 목사) 같은 대형교회까지 다양한 목회 현장을 경험한 그는 복음의 본질은 ‘말씀 중심의 설교와 양육’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진짜 부흥은 행사나 시스템이 아니라 말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2023년 그는 인천의 옛 주민센터 건물 3층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엔 가족 단위의 소수 성도와 함께 말씀에 집중하는 예배로 시작했다. 외부 홍보 없이 시작된 예배였지만 말씀이 삶을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자 교인들이 주변을 바꾸기 시작했고 성도는 하나둘 모여들었다. 개척 1년 만에 예배처소를 광명 복합쇼핑몰로 옮겼고 현재는 장년 180여명, 청년과 어린이를 포함해 등록 교인이 약 230명에 이른다. 성도들은 대전 포항 파주 등 전국 각지에서 이 도심 복합몰 교회로 찾아온다
이 교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설교다. 예화가 없다. 본문을 깊이 파고드는 해석과 조직신학, 실천신학, 선교학적 관점이 결합한다. 설교 시간만 1시간에 달하지만 교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말씀이 곧 삶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고. 임 목사는 “설교가 곧 양육이 되도록 설계했고 말씀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사명을 찾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주일예배는 2부로 나눠 드린다. 1부는 새가족과 비신자를 위한 강의형 설교, 2부는 본문 중심의 강해 설교다.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온 세대 통합예배도 시행 중이다. 자모실은 나이에 따라 2개로 분리돼 있고 전담 헬퍼가 배치돼 부모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 자모실 공간에는 고급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도 예배의 일원이 돼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예배 후 식사는 교회 안에서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쇼핑몰 내 식당 2~3곳과 협약을 맺어 ‘아델포이 교인 전용 식사’를 운영한다. 교인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식사하고 식당은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임 목사는 “식사를 준비하는 헌신도 비용”이라며 “그 자원을 줄이면서 지역 상권과 공생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교회가 지역과 함께 숨 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교회 카페도 운영하지 않는다. 교인들이 쇼핑몰 내 카페를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새신자와 외부 손님에게 전할 선물도 인근 상점에서 사도록 권한다. 그는 “교회가 지역을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공간이 될 때 선한 영향력이 생긴다”고 했다.
총신대 목회신학전문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모든 성도가 4세대 선교사”라고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 교인의 중직자화를 추진한다. 교회는 모든 교인이 각자의 삶을 선교지로 바라보도록 돕는 장소라는 것. 심방도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교인의 전문성과 은사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각자가 사명자로 서는 게 진짜 부흥이죠.” 임 목사의 말이다. 그렇다고 헌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교회 청소와 안내는 기존 중직자들이 맡는다. 새가족에게는 사역을 맡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지만 오히려 그렇게 기다릴 때 각자가 자기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섬김은 자연스럽게 가정과 일터로 이어진다.
광고회사 출신다운 감각은 디지털 사역에서도 드러난다. 교회 방송팀은 5명이 고정 활동 중이며 유튜브와 쇼츠 콘텐츠도 준비 중이다. 단순히 영상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용화 전 충분한 시뮬레이션과 검증을 거친다. 교인을 위한 미디어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그는 “AI 시대에는 기술보다 신학적 분별력이 더 중요하다”며 “교회는 그 분별을 훈련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델포이교회는 최근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KMQ포럼 등을 유치해 예배당 공간을 학술적 공유 플랫폼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성도들이 간식, 안내, 홍보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단순히 공간만 내주는 차원이 아니다. 임 목사는 포럼에서 나오는 내용을 목회 현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포럼에 참여한 교인들이 이후 설교나 양육에서 같은 내용을 다시 접하면서 학문과 신앙이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며 “교회가 한국교회 생태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겉으로 보기엔 따뜻한 공동체처럼 보여도 복음이 중심에 서 있지 않으면 진짜 열매는 없다”며 “앞으로 한국교회를 지켜갈 교회는 바로 그런 교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