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의 교회공간 탐구 26]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커뮤니티 공간_03

입력 2025-08-06 14:42
교회가 지역사회와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개방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연결은 그 공간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운영하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한 물리적 설계를 넘어,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책임감을 갖고 공간을 사용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설계와 운영은 분리된 과정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교회 커뮤니티 공간은 일회성 행사나 단기 임대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세대와 주체가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기획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 노년층을 위한 건강 교실, 청년과 창작자들이 함께 작업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오픈 랩 등은 모두 지역성과 지속성을 기반으로 한 운영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교회 내부 인력뿐 아니라 지역 주민, 시민단체, 외부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 구조가 필요합니다. 공간은 더 이상 교회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관계를 맺고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커뮤니티 공간 구성 요소 및 설계 시 고려 사항
단순히 유연한 공간 구조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 참여와 협력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참여와 협력이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물리적 장치와 인프라를 내장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다양한 운영 주체들이 교회와 병행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배치가 요구됩니다. 프로그램 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도 협업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선택적 분리가 가능한 가변형 공간이 효과적입니다. 이동식 가구와 칸막이를 통한 구성 변화뿐 아니라, 개별 공간마다 IOT기술을 활용하여 음향, 조명, 환기 등의 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하면 프로그램 활용도가 높아집니다.

운영을 위한 거점 공간도 중요합니다. 커뮤니티 운영위원회 회의실, 임시 사용자를 위한 공용 사무 공간, 외부 활동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 공간 등은 공간 내에서 사용자 간의 소통과 운영 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특히, 다양한 세대와 집단이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 디자인의 직관성과 관리 용이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또한, 공간은 안내 없이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주중·주말 구분 없이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 구획의 명확성과 동시에 흐름이 끊기지 않는 개방적인 동선은 사용자의 접근성과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계획하는 다양한 운영의 전제적 프로그램과 엑티비티가 공간 설계에 미리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지 프로그램만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는 구조를 제안해야 하며, 이를 통해 공간은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커뮤니티 공간을 단순한 시설이 아닌 ‘관계를 설계하는 장소’로 바라보아야 하며, 건축적 조건과 사회적 구조가 긴밀히 맞물리는 설계를 통해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네덜란드 흐로닝언 외곽의 신도시 미어스타드(Meerstad)는 빠르게 확장 중인 주거 개발 지역으로, 주민들의 일상적 필요와 사회적 접점을 수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설계된 SuperHub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확장 가능한 구조를 품은 커뮤니티 허브로 계획되었습니다.

건축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거대한 투명 파사드와 10m에 달하는 목재 구조입니다. 목조 기둥과 트러스가 형성하는 원형 평면 구조는 고정된 동선이 아닌 자유로운 순환과 머무름을 유도하며, 내부 전체가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의 시각적 연결이 극대화됩니다. 외관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지역의 중심 지점임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공간 구성은 상업, 여가, 휴식,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이 동시에 수용될 수 있도록 유연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슈퍼마켓, 카페, 공동 식사 공간, 행사 및 전시 공간 등이 모두 단일 구조 내에 배치되며, 개방된 구조는 사용자의 이동 경로에 따라 다양한 공간 경험을 제공합니다. 특히 프로그램 간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사용자는 공간 전체를 자유롭게 이용하며 일상과 활동을 자연스럽게 중첩할 수 있습니다.

SuperHub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근 커뮤니티 그룹과 다양한 사용자에게도 열린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향후 이 공간은 도서관, 지역 협의회 사무국, 소규모 의료 서비스 등으로 확장 가능하도록 구조적 여유를 두고 설계되었으며, 이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뮤니티의 필요에 맞춰 유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서 칼럼에서 언급했던 ‘다기능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 ‘시선과 동선의 흐름을 통한 자연스러운 접속’, ‘운영 구조를 고려한 공간 인프라’ 등의 요소가 이 프로젝트에 명확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기둥과 기둥 사이의 여백,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는 시야 구조, 확장성을 전제한 배치 등은 커뮤니티 공간 설계 시 고려해야 할 다양한 물리적 조건들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교회가 커뮤니티 공간을 설계할 때, 단기적 프로그램 수용을 넘어 관계가 누적되고 진화할 수 있는 공간적 토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구조와 운영의 접점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공간은 결국 더 오래, 더 넓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유도합니다.



Windale Hub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주민 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된 복합 공공시설입니다. 2024년에 완공된 이 공간은 단순한 시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운영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지향합니다.

프로그램은 커뮤니티 홀, 도서관, 창작 워크숍, 회의 공간 등 다양한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영역이 고립되지 않도록 시선과 동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중심 복도는 이동만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마주침이 이루어지는 복합적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연한 평면 구성과 다기능 공간 설계 전략을 잘 보여줍니다.

입면은 외부에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구조로 계획되어, 활동의 개방성과 접근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합니다. 외부에 조성된 목재 데크와 계단형 휴게 공간은 내부 프로그램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일상적인 이동 중에도 쉽게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절된 경계를 지양하고, 지역 주민이 공간에 익숙함을 느끼도록 돕는 중요한 건축적 장치입니다.

Windale Hub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간 구성 초기 단계부터 지역 주민과의 협의를 통해 프로그램과 배치가 결정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조성된 회의 공간, 임시 워크룸, 커뮤니티 게시 공간 등은 실제 운영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참여를 통한 운영 구조 설계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는 공간이 단지 사용자를 수용하는 그릇이 아니라, 지역의 주체들이 스스로 관여하고 의미를 축적해 가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Windale Hub는 건축적 개방성과 프로그램적 다양성, 그리고 운영 구조가 긴밀하게 엮인 커뮤니티 공간의 이상적인 사례입니다. 이 공간은 지역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며, 설계와 운영이 어떻게 맞물릴 때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미국 프린스턴에 조성된 FaithBased Nursing Foundation Community Center는 간호 교육, 지역 돌봄, 신앙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단일 기능에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주체가 머물고 교류할 수 있도록 계획된 이 센터는, 공간이 실질적인 사회적 연대의 장이 될 수 있음을 건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체 프로그램은 독립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갖춘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배 공간, 커뮤니티 회의실, 교육실, 치유 공간 등이 각각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용자들이 기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는 기능 간 전환과 관계의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공간 전략의 일환입니다.

건물은 주변의 자연환경과도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습지 인근이라는 입지적 특성을 고려해, 외부 마당과 산책로가 내부 커먼스 공간과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이용자들에게 시각적 개방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목재 루버와 천창 등 수동적 환경 제어 장치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자연광과 환기를 유도하고 일상의 체류를 보다 쾌적하게 만듭니다.

공간 구성에서도 ‘경계’보다 ‘관계’를 우선시한 설계가 돋보입니다. 하나의 중심축을 따라 다양한 기능이 배치되어 있으며, 복도는 폐쇄된 통로가 아닌 열린 중정과 연결된 커뮤니티 공간의 일부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동선은 단절이 아닌 연결의 흐름을 만들어내며, 사용자가 목적 없이도 머물 수 있는 경험의 장면들을 형성합니다.

FaithBased Nursing Foundation Community Center는 하나의 고정된 기능을 담는 장소라기보다, 변화하는 지역의 필요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공간입니다. 교회 공간이 지역사회와 깊이 있게 관계 맺고자 할 때, 이러한 설계 방식은 물리적 개방을 넘어 실질적인 공동체의 기반을 만드는 중요한 건축적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에든버러 구시가지 경계에 위치한 Greyfriars Charteris Centre는, 지역사회의 오랜 정신적 기반이 되어온 교회 건물을 현대적인 커뮤니티 거점으로 재구성한 사례입니다. Konishi Gaffney Architects는 기존 건축물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보존하면서도, 다양한 세대와 목적을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 교회 건축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건물의 중심부는 다목적 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연·공연·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유연하게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기존 석조 구조를 보존한 채 천창을 도입하고, 내부를 개방감 있게 구성하여 밝고 환영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였습니다. 벽면에는 접이식 가구와 이동형 칸막이를 배치해 공간의 가변성을 높였으며, 이는 앞서 강조했던 ‘프로그램 간 전환이 용이한 공간 구성’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공용 주방과 카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방문자들이 일상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계획된 이 공간은, 지역 커뮤니티가 주체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기반이 됩니다. 더불어, 회의실·상담실·창작 스튜디오 등은 독립된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복잡한 기능 간에도 유기적인 동선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새로운 진입부의 도입입니다. 기존의 폐쇄적인 접근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 모서리에 유리로 마감된 새로운 입구를 배치하였고, 이는 내부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외부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킵니다. 거리와 도시 조직 속에서 건물의 존재감을 높이는 동시에,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를 높이고 접근성을 강화하는 설계 전략입니다.

Greyfriars Charteris Centre는 공간을 단순히 개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 초기부터 운영 구조와 지역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통합적 계획이 이루어진 사례입니다. 커뮤니티 공간이 단기적 활용을 넘어서 지역사회 안에서 지속적인 관계 형성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계획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며, 교회가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공간으로 변화해 가는 데에 참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