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S는 어떤 행동을 한 후 늘 후회하면서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떤 일을 하고 나면 ‘뭔가 잘못한 느낌이 들고, 더 잘해야 했는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부족하다는 느낌 즉 ‘자기 결함감’을 느끼며, 문제와 원인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풀리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시험을 본 후에도, 친구들과 놀고 온 후에도, 친척 집을 방문한 후에도, 프로젝트를 완성한 후에도 늘 이 느낌이 뒤따른다. 그래서 현재 필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다.
이런 느낌 즉 결함감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이런 느낌은 원인을 찾아 문제를 풀듯이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접근은 늘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을 일단 잘 관찰한다. 빨리 인식하는 거다. 그런 후에 그것이 자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런 감정, 생각들은 장기판의 말들처럼 자신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것과 거리가 생긴다. 느낌에 거리를 갖지 않고 갇혀버리면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기 어렵다. 이전에 했던 행동 방식만 반복하기 때문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지금의 ‘자기 결함감’과 연관되는 과거의 경험을 찾아보는 거다. 완벽주의자인 S의 부모님은 학교의 일을 얘기해도, 무언가 과제를 완성해서 보여드려도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늘 뭔가 부족함을 지적했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러면 ‘뭘 더 잘했어야 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더 잘해야 한다’ 압박을 늘 느꼈다. 그런 경험은 현재 느끼는 ‘자기 결함감’과 ‘뭔가 더 잘했어야 해’라는 압박감과 유사했다. 하지만 더 잘하고 부모를 만족시키기는 일이 잘되지 않았다. 이렇게 현재 경험과 과거 경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현재의 ‘결함감’이 과거에서 비롯되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현재의 S가 과거의 S를 떠올리며 과거의 느낌과 다소 거리감을 만들 수 있다.
연결고리만을 만들고 부모를 원망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과거를 되돌이킬 수도 없지 않은가? 더 연습해야 할 것은 과거의 경험도 내 경험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걸 깨닫는 거다. 장기판의 말처럼 과거의 경험도 나의 일부일 뿐이고 장기판의 말은 계속 바뀌고 새로운 말로 채워진다. 물을 담고 있는 물병처럼 자신은 이런 경험들을 포함하고 있는 더 큰 존재라는 걸 알아차리게 도와주어야 한다. 현재 17살의 S가 과거 6살, 8살, 10살 때의 S가 느꼈던 느낌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거다. 그러면 과거는 또 과거일 뿐이고 현재의 S는 또 다른 존재임을 느끼면서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찾게 된다. 과거에 갇혀 있을 때는 과거에 했던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면 새로운 행동 방식이 나올 수 있게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