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정전보다 전화 안 받는 게 더 화나”… 제주 ‘3만 가구 정전’ 대응 논란

입력 2025-08-04 16:39 수정 2025-08-04 17:08

열대야가 한 달째 이어지는 제주에 저녁시간대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3만 가구가 큰 불편을 겪었다. 제주시 도심지역 전체 가구의 20%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재난안전 문자가 발송되지 않으면서 정전 구역에 있던 도민과 관광객들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4일 한국전력공사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38분쯤 제주시 일도동과 이도동, 아라동, 오라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전기 공급이 끊긴 가구는 총 3만1347가구로, 제주시 도심지역(동지역) 전체 가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전은 정전 당일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오후 9시46분 복구를 완료했다’고 알렸다. 정전 8분 만에 조치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한전은 이튿날인 4일 오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하지만 10분 내 복구가 완료됐다는 한전 측 설명과 달리, 정전 당일 도민 불편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밀집한 도심지에서 일과를 마무하던 저녁 시간대에 정전이 발생하면서 각 가정과 상점가는 혼란에 빠졌다. 영업 중인 가게에 조명이 꺼지자 손님과 주인은 우왕좌왕했고, 냉장고 안 음식이 상할까 가게 주인들은 전전긍긍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승강기에 갇혔다. 가압 펌프로 물을 공급하는 아파트에선 정전으로 단수가 됐다. 케이블 유선방송 가입 가구의 TV가 끊기고, 와이파이 사용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겨 휴대전화 이용까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4일 오전 제주소방안전본부에 올라온 일일 상황보고. 전날 정전으로 인한 신고 건수가 300건에 달했다. 자료 캡쳐

정전 직후 119상황실에는 신고가 폭주했다.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오후 9시39분부터 10시6분까지 27분간 29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엘리베이터 갇힘 신고가 5건, 소방시설 오작동 5건, 정전 문의 93건 등이다. 나머지 195건은 정전 관련 중복 신고로 분류됐다. 한전이 밝힌 정전 복구 시간 이후에도 정전으로 인한 불편이 계속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전 원인은 조기에 해소됐지만, 아파트나 상가 등 대형 건물의 경우 정전 시 보호설비가 작동해 건물 안전관리자가 수동으로 전기 공급을 재개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정전이 발생하자 한전은 발생 지역 가구에 카카오톡으로 정전 알림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림문자는 해당 구역 거주자에게만 발송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사람들은 정전 상황을 알 수 없다. 관광객이나 저녁 약속, 업무 등으로 일대를 찾은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대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주민 가운데에도 문자를 받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도남동에 살면서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3)씨는 “가게 불은 일찍 들어왔는데, 아파트에는 40분간 전기가 끊겼다”며 “정전 알림 문자가 오지 않았고, 사유를 알기 위해 만덕콜(제주도 상담 전화), 한전 상황실 등으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속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한전이 행정안전부에 재난안전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정전 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전으로 인해 공급하지 못한 전력량이 120㎿(6만 가구 동시 정전 규모) 이상일 때 행정안전부에 알려 재난 문자를 발송하는데, 이번 정전 규모는 46㎿였다.

제주지역 재난안전 총괄기관인 제주도를 통한 문자 발송도 가능하지만 ‘재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제주도에 정전 상황을 전파하지 않았다’고 한전 관계자는 설명했다.

기관 간 정보 공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이날 오전 공표한 ‘119소방활동 일일 종합상황’에 정전 원인을 ‘변전소 변압기 고장’이라고 기재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한전에 직접 들은 바는 없다”면서도 “동제주 변전소 내 보호계전기 고장”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반면 한전 측은 “주요 설비 고장은 아니며, 현재로서는 날씨 또는 기타 외부요인으로 이상전압 등이 유입돼 차단기가 작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4일 오후 알려 왔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에서 제주도에 정전 상황을 보고할 의무는 없다”면서 “정전 시 재난안전 문자 발송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은 한전 본부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전 당일 제주지역의 전력 공급은 안정적인 상태였다. 전력거래소 제주지역 전력수급실적에 따르면 당일 공급 능력은 1682.64㎿, 최대 전력 수요는 1010.23㎿로 예비율은 66.56%에 달했다.

여러 도민과 관광객들은 “폭염 문자는 매일 비슷한 내용으로 계속 날라오는데 정전 같은 이슈는 더 공유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더운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보다 전화 안 받는 게 더 화가 났다”고 언성을 높였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