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세계 클래식계의 주요 피아노 콩쿠르 5개가 몰린 특별한 해다. 3년 주기의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를 시작으로 4년 주기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앞서 우승자를 배출한 상태다. 그리고 2년 주기의 부조니 콩쿠르는 오는 27일~9월 7일, 5년 주기의 쇼팽 콩쿠르는 10월 2~23일 본선이 치러진다.
올 상반기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 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8~9월 잇따라 리사이틀을 연다.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 우승자 김세현(18)이 오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아리스토 샴(29)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니콜라 미우센(23)이 9월 11일과 19일 서울 거암아트홀에서 각각 리사이틀을 연다. 미래의 거장을 일찌감치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김세현은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청중상·평론가상·파리 특별상(2만명 이상의 파리 음악도 투표로 결정) 등 특별상 3개를 휩쓸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이 번갈아가며 열리는 이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우승자는 임동혁(2001년)을 시작으로 안종도(2012년), 이혁(2022)에 이어 김세현이 네 번째다.
열 살 때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김세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나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피아노 석사 과정과 하버드대 영문학 학사 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과 백혜선이 그의 스승이다. 롱-티보-크레스팽 콩쿠르 우승 후 5월 8일 파리 개선문 앞에서 열린 유럽전승기념일 평화음악회, 7월 14일 파리 에펠탑 앞에서 열린 프랑스 혁명기념일 콘서트에서 공연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년 봄 발매를 목표로 세계적 음반사 워너클래식과 데뷔 앨범도 준비 중이다.
오는 8일 ‘2025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국내 관객을 가장 먼저 만나는 김세현은 최근 해외에서 자주 연주했던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포레의 즉흥곡 2번을 비롯해 모차르트, 쇼팽 등의 곡을 들려준다. 김세현은 서울에 앞서 5일 부산콘서트홀에서도 같은 레퍼토리로 무대에 선다.
홍콩 출신의 피아니스트 아리스토 샴(29)은 2025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금메달과 청중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앞서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속으로 우승해 한국에도 친숙한 대회다. 올해 콩쿠르에서는 라운드마다 어려운 곡을 선택하면서도 뛰어난 연주력을 보여준 샴이 이견 없는 우승을 차지했다.
샴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3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10살부터 주니어 콩쿠르를 휩쓸었던 그는 독주 무대에 서거나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했다. 13살 때는 영국의 채널 4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세계 최고의 음악 신동들’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피아노와 정규 교육을 병행한 그는 2019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학사, 2020년 NEC 피아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거나 입상했지만 소위 메이저 콩쿠르 우승이 없었는데,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아쉬움을 떨치게 됐다.
거암아트홀이 주요 콩쿠르 우승자들의 무대를 선보이는 ‘위너스 콘서트’ 일환으로 내한하는 샴은 11일 서울 공연에 앞서 7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9일 천안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한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등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니콜라 미우센(23)은 올해 벨기에서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의 첫 네덜란드 출신 우승자가 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미우센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퀸 엘리자베스 뮤직 샤펠의 상주예술가로서 2022년부터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콩쿠르 협력 악단인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한 적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결선에서 연주한 프로크피예프 협주곡 2번을 지난 2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운 미우센은 9살 때 스타인웨이 콩쿠르, 12살 때 콘세르트헤바우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노 영재다. 이후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협연자 겸 상주 아티스트로 활약해 왔다. 거암아트홀의 ‘위너스 콩쿠르’ 프로그램으로 19일 한국 데뷔 무대를 가지는 그는 멘델스존의 ‘진지한 변주곡’,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슈만의 ‘사육제’ 등을 선보인다.
그는 콩쿠르 준우승자인 일본의 와타루 히사스에와 함께 9월 16일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 18일 서귀포예술의전당, 20일 당진문예의전당에서 ‘2025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