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평생 일을 하신 분이라는 게 티가 나는 게 보도블록에 잡초들이 나 있어요. 근데 할머니가 앉은 쪽에 잡초, 다 뽑혀 있거든요.”
노점 할머니가 머문 자리 보고 뭉클해진 이유
지난 7월 9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손글씨 공방을 운영하는 김지애 사장님은 가게 앞 거리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김지애씨 : 부추 다 주세요 할머니, 더우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집에 얼른 들어가시라고.
할머니 : 집이 저 강건너서.
김지애씨 : 개울 건너에요?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너무 더워요. 너무 더운 날은 나오지 마세요.
할머니 : 근데 이거 심어 놓고 먹던 거라 아까워서. 100살이야. 100살
할머니 : 집이 저 강건너서.
김지애씨 : 개울 건너에요?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너무 더워요. 너무 더운 날은 나오지 마세요.
할머니 : 근데 이거 심어 놓고 먹던 거라 아까워서. 100살이야. 100살
땡볕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빨리 집으로 보내 드리기 위해 몽땅 사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듯하죠? 맞습니다.
영상 속 할머니는 지난 7월 7일 용돈을 털어 할머니의 콩을 사드렸던 옥현일 군 사연에 등장하는 바로 그 할머니입니다. 지애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려 현일군을 칭찬한 제보자고요.
지애씨가 할머니를 처음 본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고 해요. 한여름에도 땡볕에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가 걱정스러웠던 지애씨는 가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네고 물건을 사드리곤 했다죠. 현일 군이 나타난 그날도 지애씨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넸는데, 마침 수중에 현금이 없어 채소를 사드릴 수는 없었고, 너무 더운데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에 자주 거리를 내다보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3시 무렵, 동두천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쭈뼛거리며 할머니께 다가가는 게 보이더군요. 현일 군이었습니다.
김지애씨
“아이가 할머니 물건을 사드리려고 하나 보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어디 가길래, 날씨가 너무 더운니까 아이스크림을 사드리려고 가는 건가 하고 계속 지켜봤어요. 근데 손잡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 할머니한테 돈을 건네주는데….”
“아이가 할머니 물건을 사드리려고 하나 보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어디 가길래, 날씨가 너무 더운니까 아이스크림을 사드리려고 가는 건가 하고 계속 지켜봤어요. 근데 손잡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 할머니한테 돈을 건네주는데….”
현일군은 자신의 비상금 5만원을 만원짜리로 바꿔 할머니께 3만원을 드린 거였습니다. 나중에 현일 군 얘기로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돈을 드리면 일찍 집에 가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죠. 할머니는 한사코 뭐라도 가져가라며 기어이 강낭콩 한 봉지를 쥐어줬고, 현일 군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이렇게 어색하게 웃으며 사라집니다.
이 모습이 지애씨가 찍은 영상 덕에 널리 알려졌고, 현일 군은 학교와 시의회에서 표창장까지 받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이 모든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직접 키운 농작물을 들고 같은 자리에 나오신다고 합니다.
김지애씨 : 영상 이렇게 찍어도 괜찮아요. 저 몇 번 사 먹었어요. 몇 번 사먹었어요, 할머니.
할머니 : 사 먹었어?
김지애씨 : 맛있어. 호박잎도 사먹고 부추도 사먹고.
할머니 : 사 먹었어?
김지애씨 : 맛있어. 호박잎도 사먹고 부추도 사먹고.
할머니는 자신이 정성껏 기른 채소를 맛있게 먹었다는 지애씨의 말에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그러고는 지애씨가 건넨 음료로 목을 축인 뒤 15분만에 자리를 정리하고 귀가하셨는데, 지애씨는 할머니가 계셨던 자리를 보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요.
할머니가 매일같이 뽑아서 할머니가 앉아 계신 주변은 이렇게 잡초 하나 없이 말끔했거든요. 이것 보세요. 달라도 너무 다르죠. 지애씨는 할머니가 10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하신 이유가 이런 부지런함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고 해요.
김지애씨
“할머니 물건이 없어져야 할머니가 들어가시는 거니까 쓰러지시면 안 되니까 들여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갖고 왔는데 (생각해 보면) 할머니한테는 맛있게 잘 먹어주면 그게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이거든요.”
“할머니 물건이 없어져야 할머니가 들어가시는 거니까 쓰러지시면 안 되니까 들여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갖고 왔는데 (생각해 보면) 할머니한테는 맛있게 잘 먹어주면 그게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이거든요.”
그 보람을 느끼기 위해 할머니는 분홍색으로 곱게 차려입고는 시계에 반지까지 끼고 이곳에 나오시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너무 더운 날엔 안 나오셨으면 좋겠다는 게 지애씨 바람입니다.
할머니 : 이젠 말라서 없어. 오늘 마저 땄어. 이것만 팔면 (집에 가야지).
김지애씨 : 맛있게 잘 먹을게요.
할머니 : 고마워. 팔아줘서.
김지애씨 : 맛있게 잘 먹을게요.
할머니 : 고마워. 팔아줘서.
13일 만에 다시 등장한 할머니
그렇게 할머니의 뜨거운 여름 노점이 끝이 나는 듯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지애씨와 만난 지 13일이 지나, 지난달 22일 오후 5시쯤 분홍색 옷을 곱게 차려 입고, 부추 두 봉지를 들고나오셨죠. 마침 일찍 퇴근했던 지애씨는 인근 사장님한테 연락을 받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물론 대낮 땡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열이 올라와 더위가 계속됐거든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지애씨는 남은 부추 한봉지를 마저 샀습니다. 할머니의 조기 퇴근을 위해서였죠. 그렇게 할머니가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지애씨. 아들 내외와 함께 생활한다는 말에 내심 안도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농작물을 팔아 여름 내내 시원한 냉면을 사 드셨다는 얘기에 지애씨는 뿌듯했다고 해요. 많은 이들은 할머니의 근황 영상을 보고, “스스로의 삶을 즐기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감동적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고, 지애씨도 부디, 건강하게 오래 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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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