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도 모르는데…” MBTI·테토력의 양면성

입력 2025-08-03 01:24
에겐남 테토남 테스트 첫 화면. 푸망 제공

소요시간 2분. 나의 테토력과 에겐력을 확인해 보세요.

에겐·테토 테스트를 들어보셨나요. 남녀 호르몬 기질에 빗대 성격을 분류하는 진단 콘텐츠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웹페이지의 에겐·테토 테스트에서만 130만건 넘는 이용 횟수가 기록됐습니다. 여기서 테토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에겐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뜻합니다. 유형은 테토남 테토녀 에겐남 에겐녀 총 4가지로 나뉘는데요, 이성에게 잘 의지하지 않거나 뒤끝이 없는 성격을 가진 이들에겐 ‘테토’, 예술을 즐기거나 섬세한 성격을 가졌으면 ‘에겐’으로 분류합니다.

자가 진단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진심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힙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3일 기준 우리나라는 최근 5년간 세계에서 MBTI를 가장 많이 검색한 국가입니다. 2~3위인 몽골 일본보다 검색량은 2배가량 많았습니다. MBTI가 개발된 곳으로 알려진 미국과 견주면 20배나 많았고요. 온라인 백과사전 인물 정보에도 이젠 MBTI가 빠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애착 유형 검사’ ‘연애 유형 테스트’ ‘사이코패스 테스트’ 등 “5분 안에 당신이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진단 콘텐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구글 트렌드 캡처

이런 진단 콘텐츠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MBTI부터 에겐·테토 테스트, 애착 유형 검사까지 유행하는 심리 검사는 거의 섭렵했다는 크리스천 대학생 강수정(가명·22)씨. 그는 “교회 소그룹에서 새로운 청년을 만나면 자기소개할 때 MBTI가 빠지지 않는다”며 “이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MBTI가 뭔지 저절로 추론하게 될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가 단순 재미를 넘어 대인관계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최근 친구들과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일정 조율을 도맡았다는 문창진(가명·22)씨. 그는 “무리 중 나만 J(계획형)이라는 게 이유였다”며 “인정받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성격 유형 하나로 모든 일을 떠맡게 되니 불편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듯 성격 유형 테스트에 과몰입하면 복잡한 인간을 단순하게 유형화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다면적인 개개인의 기질과 성격이 몇 가지 유형으로 납작해지는 셈이죠. 또 성향이 조금만 한쪽으로 치우쳐도 완전히 그 극단에 속한 것처럼 오해받는 왜곡이 생깁니다.

성격 유형 결과가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변질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나는 P(자율형)니까 막살아도 괜찮아” “나는 F(감정형)가 아닌 T(사고형)니까 공감할 수 없어” “공공장소지만 난 테토남이니까 목소리가 커도 괜찮아”처럼 게으름이나 책임회피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국민일보DB

한데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이런 성격 테스트들은 실제로는 과학적 근거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당초 짧은 시간 내 몇 가지 객관식 문항에 답하는 방법으론 복잡한 인간의 성격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널리 알려진 MBTI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나를 포함한 주변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의 MBTI를 모르고 큰 관심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진단 콘텐츠에 몰입하는 걸까요. 윤 교수는 “우리 마음엔 나와 나의 관계, 타인과 나와의 관계를 알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며 “변화가 많은 시기일수록 불안감이 커지고, 그럴수록 단순한 틀을 가지고 성격과 관계를 해석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 성격은 상수가 아닌 환경과 경험에 따라 바뀌는 변수”라며 “이런 심리 검사 결과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단 자신을 가볍게 이해하는 도구 정도로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진단 콘텐츠에 대한 가벼운 접근이 권장되는 가운데, 신앙인에겐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국복음주의상담학회 회장인 김규보 총신대 교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할 신앙인들은 자신의 연약한 성품을 개선해가야 하는데, 성격 유형에 과몰입하면 이를 타고난 특성으로만 여겨 영적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진단 콘텐츠로 자신의 기질을 합리화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으로 배려와 섬김의 관계를 맺을 때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윤영훈 성결대 교수는 “성경의 야곱과 사도바울도 수십 년에 걸쳐 차근차근 자기 정체성을 알아갔다”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변화 가능한 입체적 대상이란 걸 기억하자”고 권면했습니다.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