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당한 아들의 사건 기록을 열람한 뒤 “구속 얘기는 없으니 걱정 말아라”라고 말한 경찰관의 행위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원심 판결을 일부 파기 환송했다. 사건은 의정부지법에서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씨는 경기도 한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으로 재직하던 2020년 9월 아들이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같은 경찰서 수사과 소속 행정관에게 사건 기록을 건네받았다. 이씨는 검사 수사지휘서에 구속 등 신병 관련 수사지휘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아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지도 않았고 검사 지휘내용에도 구속 이야기가 없어 구속될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1·2심은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가 전달한 내용은 수사지휘서의 내용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수사상황을 누설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검사가 구속영장 신청 등 신병 처리에 관해 수사 지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검사가 신병 처리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충분히 추단할 수 있는 정보로 수사지휘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휘서 내용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이씨의 아들은 수사기관에서 현재 범죄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해당 사안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있는지 추측하고 그에 맞춰 대응해 수사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경찰관인 피고인(이씨)의 행위는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훼손됨으로써 수사의 궁극적인 목적인 적정한 형벌권 실현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씨가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했다. 이씨는 아들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에게 “아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며 조사 일정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청문감사관으로서 직무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