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미국산 만다린(Mandarin, 감귤류)에 무관세가 적용된다. 2007년 체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매년 관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인데, 제주 감귤산업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 등에 따르면 미국산 만다린의 관세는 2012년 한·미 FTA발효 이후 매년 9.6%씩 단계적으로 인하하도록 설정됐다. 원래 관세율이 144%였고, 15년 차인 2026년 완전 철폐되는 구조다.
내년 무관세가 적용되면 미국산 만다린의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미국산 만다린은 공식 수입이 시작된 2017년 당시 수입량이 0.1t에 불과했으나, 2018년 8.3t, 2020년 512t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3년에는 728t, 관세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지난해에는 3099t이 수입돼 전년보다 4배 이상 수입 규모가 늘었다.
관세율이 한 자릿수가 된 올해는 상반기에만 7951t으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관세율이 낮아질수록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면서 수입량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산 만다린에는 수입 수량이나 금액을 제한하는 쿼터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2007년 한·미 FTA 체결 당시 민감 품목으로 분류해 즉시 개방 대신 15년간 점진적 개방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당도가 높고 가격이 저렴한 미국산 만다린이 국내에 대량 수입되면, 제주산 감귤 판매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04년 한·칠레 FTA 발효로 칠레산 포도 수입이 크게 늘자 제주산 감귤, 특히 칠레산 포도 수입 시기(4~6월)와 출하 시기가 겹쳤던 하우스감귤의 도매가가 하락한 사례가 있다.
이는 동일 품목뿐 아니라 출하 시기나 소비 패턴이 겹치는 다른 품목에 의해서도 과일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미국산 만다린은 2~5월 사이에 수입된다. 이 시기 출하하는 한라봉 등 만감류와 하우스감귤 생산 농가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다린은 오렌지와 달리 손으로 쉽게 까먹을 수 있고, 국내산 감귤과 외형상 차이가 없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적을 것으로 농가에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 농민들은 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의 농산물 협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타결 직후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 민감 품목은 추가 개방은 없다며 다만 검역 절차 개선 등 비관세 장벽 관련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산 농산물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SNS)에 게시했다.
이 가운데 대체과일로 감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사과가 비관세 조치 협의 대상에 포함될 경우 사과 시장 개방이 감귤 소비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비관세 조치 협의’란 관세 외에 검역이나 기술 수준, 행정 절차 등을 완화해 무역 장벽을 줄이는 협상을 말한다. 현재 미국산 사과는 시장은 개방돼 있지만 검역 단계를 넘지 못해 수입되지 않고 있다.
김필환 제주도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은 1일 “칠레산 포도 수입 사례에서 경험했듯 맛있고 저렴한 과일이 대량으로 수입되면 그 시기 출하되는 다른 과일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며 “당장 내년부터 미국산 만다린 관세가 철폐되면 감귤은 물론 딸기, 사과, 배 등 우리나라 과일시장이 잠식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제주 농민들은 굉장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번 관세 협상 최종 결과가 구체적으로 발표되면 대응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