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에 있는 쇼핑몰에서 남한의 즉석사진관인 ‘인생네컷’과 흡사한 사진 부스가 포착됐다. 인생네컷은 남한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 있는 즉석사진관 브랜드로 K팝 등 한류 열풍과 함께 인기를 끌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했지만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30일 통화에서 “북한이 인생네컷 사진 부스와 유사한 형태의 기계를 낙랑애국금강관에 설치한 것 같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설치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생네컷은 별도의 사진사 없이 네 컷 이상의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남한의 브랜드다. 2017년 첫 부스가 등장한 후 네 컷 사진의 유행을 선도했다. 최근에는 인생네컷과 유사한 ‘픽닷’ ‘돈룩업’ ‘포토이즘박스’ 등의 업체도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강 교수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낙랑애국금강관 내부에는 인생네컷과 비슷한 사진 부스가 설치돼 있다. 사진 부스 위에는 ‘멋진 사진사’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 프로그램은 자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진 프레임이나 형식이 한국의 즉석 사진 기기와 유사했다. 사진을 꾸밀 수 있는 기능도 담겼는데 ‘개성적인’ ‘분홍빛’ ‘질감묘출’ 등 용어가 사용된 모습도 포착됐다. 해당 기기에서 구글 등 외부 인터넷 접속은 차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낙랑애국금강관에는 현대식 현금인출기(ATM)가 설치된 것으로 포착됐다. ATM에는 ‘만물상’ ‘앞날’ ‘나래’ 등 여러 은행으로부터 돈을 찾을 수 있는 페이지가 기기에 담겼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과거에 당국에 돈을 맡기고 받아서 사용했다. 기존에도 북한 ATM이 매체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쇼핑몰에 설치될 정도로 보편화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2023년 12월 남한을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라고 규정하며 남한과 단절을 선언한 상태다. 이에 앞서 남한 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도 만들었다. 하지만 K팝 아이돌 노래를 표절하고 피시방, 즉석사진관까지 설치하는 등 남한의 문화를 모방하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즉석사진관의 유행을 접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 당국은 남한에서 유행이 시작됐다는 걸 알고도 따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이런 흐름은 ‘문화적 열등감’과 연결된다는 해석이다. 강 교수는 “평양 일부이지만 세계적인 기준, 추세에 북한 내부가 맞춰가고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최근 영화에도 파격적인 노출 장면을 넣는 등 기존과는 다른 문화 콘텐츠들을 만들고 있다”며 “남한 문화를 차단하면서도 젊은 층 등의 문화적 출구를 만들어 열등감을 자기들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