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리플레e] 사랑만으론 안 되는 교실 안 e스포츠, 제도라는 벽 앞에 서다

입력 2025-08-02 08:00

최근 스무 분가량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인 e스포츠 간담회에 참석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e스포츠 동아리를 운영하는 교사들, 학교 현장에서 e스포츠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e스포츠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랑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e스포츠 활동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다양한 어려움을 진솔하게 들려주셨다.

가장 큰 고충은 교육과정과 업무 체계 사이에 e스포츠가 ‘자리 잡을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교는 과목 단위로 행정이 돌아가는데, e스포츠는 ‘체육’, ‘정보’, ‘예체능’ 그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못한 채 창의적 체험 활동 안에만 머물러 있다. 교사들은 이런 구조 속에서 지도 업무가 실적에 반영되지 않고, 출장도 어렵고, 대회 참여를 위해 출장을 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공 학생이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은평메디텍고등학교에는 120명의 e스포츠 학과 학생이 있지만 이를 지도하는 교사는 단 3명뿐이다. 훈련 시간은 부족하고, 정규 수업 외 활동은 최소 교육 이수시간에 포함되지 않아 지도에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한 교사는 교육과정을 만들 때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짜는 기분이라며, 현장 교사에게 교과서와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술적 환경도 장애 요소다. 학교 내부망의 방화벽 설정으로 인해 외부 게임 서버와의 연결이 어렵고, 대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회선 안정성도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회선 속도가 불안정해 대회 중간에 접속이 끊기거나, 서버 지연(3분 딜레이)으로 인한 불공정 시비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제도적 문제도 지적됐다. 현재 문체부가 주관하는 대회에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공교육 체계 안에서는 이를 ‘공식 활동’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에서 주최하거나 최소한 공동 주관의 형태로 시상과 출장 근거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시상 실적이 교사의 평정이나 학생의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현장 참여 유인은 훨씬 커질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일부 지역 교육청의 사례도 공유됐다. 경기도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은 각각 조례를 제정하여 학교 e스포츠 운영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그중 경기도 조례는 비교적 상세한 기준과 절차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조례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법률 단위의 상위법에서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왔다.

교육과정 연계에 대한 아이디어도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한 교사는 “e스포츠 교과서를 개발해, 최소 32시간짜리 모듈 형태로 적용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지역 단위에서도 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교육청이나 개별 학교장의 의지만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간 아카데미나 사교육 업체가 아닌, 공교육이 교과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도 있었다.

전국 e스포츠 교사 연구회와 같은 현장 교사 중심의 네트워크가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면, 콘텐츠 개발과 커리큘럼 정비, 평가 기준 마련 등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AI 활용 교육, 디지털 시민교육과 e스포츠를 연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눈에 띄었다. e스포츠는 단지 게임이 아니라 디지털 세대의 언어이자,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제도적 한계 외에도 운영 과정에서의 아쉬움도 나왔다. 한 선생님은 “문체부가 개최하는 대회가 종종 인기 없는 게임 위주로 구성돼, 오히려 학생들의 관심도가 낮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한 게임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학생들도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학교 단위의 대회 체계’를 구축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홍보의 문제도 있었다. 지금은 대회가 열려도 학교에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문체부에서 내린 공문은 학교에서 ‘외부 행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는 교육청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현장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 진다는 것이다. 학교 e스포츠 협의체와 같은 상설 조직을 통해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끝으로, 선생님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정리했다. “지금처럼 민간 중심, 비공식 구조, 개별 학교장의 의지에만 기댄 e스포츠 운영은 지속성이 없다. 교육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꼭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학교 e스포츠 업무를 ‘병행’형태로나마 담당하는 교육부 내 창구가 있었으면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현장 교사들이 말한 이 모든 어려움은 단지 e스포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교육, 디지털 교육, 콘텐츠 교육을 둘러싼 우리의 제도와 사고방식이 어디까지 왔고, 어디에서 멈춰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이 거울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일, 지금이 그 출발점일지 모른다.

이도경 국회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