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교회는 재난 현장으로 갔다

입력 2025-07-30 15:16 수정 2025-07-31 09:40
서현교회 교인이 29일 경북 안동 도진교회에서 지붕 수리를 하고 있다.

산불과 물 폭탄이 할퀴고 간 국내 재난 지역에서 교회가 단기선교(아웃리치)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온열 질환 발생주의.’ 지난 29일 경북 안동은 낮 기온 36도를 넘겼다. 불볕더위에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문자가 30분마다 휴대전화 화면을 깨우는 날씨였지만 경북 안동 도진교회(백남훈 목사) 앞은 긴 팔 작업복에 토시, 햇빛가리개로 중무장한 사람들로 열기를 더했다. 이들은 산불 재난 이후 어려움을 겪는 농어촌 선교 사역으로 교회 보수 작업을 돕기 위해 모인 서울 서현교회(이상화 목사) 교인들이었다.

올여름 서현교회가 아웃리치 대상으로 삼은 곳은 해외가 아닌 국내 재난 지역이었다. 안동 일대 12개 교회를 돕기 위해 성도 120여 명이 참여했다. 사역은 4일간 진행된다.

도진교회 보수작업을 총괄한 이용범(66) 서현교회 장로는 “직접적인 산불 피해는 없었지만, 건물이 낡아 장마철이 더 걱정됐다”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 차원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사역을 위해 여름 휴가를 반납한 가족도 있었다. 이현지(32) 씨와 송원기(32)씨 부부는 “교회를 재건하는 뜻깊은 일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며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봉사자들이 29일 경북 안동태화교회에서 여름성경학에 참여하고 있다.

예배당 수리와 병행해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도 열렸다. 차량으로 20분 거리의 안동태화교회(이원태 목사)에서는 찬양과 율동, 놀이가 이어졌다. 서현교회는 이 교회에서 4년째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있다. 김도현(8)군은 “작년에 너무 재밌어서 올해도 기다렸다”고 했다. 최지훈 서현교회 부목사는 “산불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교인들과 주민들 안에 남아 있다”며 “한국교회가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재난현장을 주목한 건 서현교회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성남 선한목자교회(김다위 목사) 바울 교구 성도 53명은 지난달 27~28일 경북 영덕 빛과소금교회(최병진 목사)를 찾아 임시 예배당을 정비하고 주차장 평탄화, LED TV 설치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마을 주민에게는 삼계탕을 대접하고, 손톱다듬기와 미용 봉사도 함께했다. 8월에는 청년부가 다시 방문해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가을에는 남선교회 중심의 추가 아웃리치도 계획하고 있다.

선한목자교회 바울교구 교인들이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 빛과소금교회에서 어르신들의 손톱을 다듬고 있다. 선한목자교회 제공

경기도 부천 목양교회(이규환 목사) 교인 15명은 지난 21일 새 단장을 마친 경북 영덕 어천교회(한영식 목사)를 방문했다. 산불 피해 당시 예배당 절반이 불에 탄 이 교회를 위해 목양교회 교인들은 헌금을 모아 새 음향장비와 강대상을 제공했다.

교회들의 연합 지원도 펼쳐졌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김정석 목사) 소속인 경북 구미제일감리교회(최세헌 목사) 육군군사중앙학교 문무대교회(김영호 목사) 부산온누리교회(박성수 목사)는 지난 3월 발생한 산불 피해 이후 헌금 3700만 원을 모아 안동과 영덕 지역 지원을 공동 기획했다. 거점 교회인 안동제일교회(백종석 목사)와 영덕중앙교회(조황제 목사)와 연계해 프로젝트형 아웃리치 사역을 펼치고 있으며 향후에도 복구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 20일에는 부산온누리교회 성도 25명과 구미제일교회 성도 10명이 함께 안동제일교회를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발마사지와 미용봉사, 선물 증정 등을 실시했다. 이어 26일에는 부산온누리교회 의료선교팀 20명이 영덕중앙교회를 찾아 의료 진료를 벌였다. 세 교회는 안동과 영덕을 각각 두 차례씩 추가 방문할 예정이다.

단체 차원의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 신동식 이상민)는 대구 기윤실을 중심으로 지난 5월 31일, 6월 28일, 7월 23일, 7월 28일 등 네 차례에 걸쳐 경북 영덕과 경남 합천 일대 재난 현장을 찾았다. 자원봉사자들은 농번기 일손 돕기와 모듈주택 입주 청소, 잡초 제거, 식사 제공, 수해 복구에 참여했으며 의료진이 동행해 진료와 의약품 지원도 함께 이뤄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4차에는 온열 질환 대응을 위해 의료진 8명이 긴급 투입됐다. 총 111명의 자원봉사자가 사역에 참여했다. 김승무 대구 기윤실 실행위원은 3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산불로 숲이 사라진 자리에 수해가 겹치고 이어진 무더위에 온열 질환 사례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성공회(의장주교 박동신)는 산불 피해 직후 성금을 전달했고 최근에는 복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피해 지역 현장을 찾았다. 구세군 한국군국(사령관 김병윤)은 지난 3월 산불 당시 식사와 생필품을 긴급 지원했으며 이번 여름에는 경남 산청 지역 수해 피해자들을 위해 1만 4990인분의 식사를 제공했다.

재난 현장에서 교회가 전한 것은 물질적인 지원만이 아니었다. 지저스커피선교회 백두용 목사는 지난 23~24일 경남 산청 수해 지역을 찾아 이재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나눴다. 백 목사는 약 3년 전부터 수해나 산불 등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며 ‘커피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강릉 산불, 예천 수재민 실종자 가족 위로 활동 등을 이어왔다.

교회가 눈길을 돌린 재난은 자연재해만이 아니었다. 생계가 무너진 지역 경제 역시 또 다른 재난의 현장이었다. 이를 위해 여름 수련회를 지역 회복의 통로로 활용하는 교회들도 있다. 경기도 화성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는 지난 27일부터 강원도 강릉에서 수련회를 열고 지역 교회와 함께 전도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강릉시장 식사 투어와 지역 물품 구매를 통해 침체된 상권에 숨을 불어넣었다. 태백시기독교연합회(회장 백창곤 목사)와 태백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오대석 목사)도 강원도 태백 황지교회(김종언 목사)와 검룡소 등에서 찬양집회, 시티투어를 열어 지역사회에 활력을 더했다.

안동=글·사진 박윤서 손동준 김용현 김동규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