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스포 금지” 연극 ‘2시 22분’(~8월 1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의 커튼콜 때 무대 상부에 등장하는 자막이다. 스포는 주요 줄거리나 내용을 관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행위인 ‘스포일러’(spoiler)의 약어다. 원래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결말을 알면 되면 재미가 절반 이하로 반감되는 법이다. 특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결말이라면 더더욱 모르고 봐야 한다.
연극 ‘2시 22분’은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새벽 2시 22분마다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는 제니가 남편 샘, 남편의 친구 로렌 그리고 로렌의 애인 벤과 함께 그 정체를 놓고 논쟁하는 작품이다. 공연 초반에는 낯선 소리와 기이한 현상이 긴장감을 자아냈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슬픔과 여운이 남는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공연 초반 안내 멘트와 커튼콜의 자막에 이어 극장 로비에서 “쉿, 제발 말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배지까지 배부하며 스포 예방에 힘쓰고 있다. 최승희 신시컴퍼니 홍보본부장은 “관객들이 ‘스포 금지’ 요청을 잘 지켜주고 계신다. 이번 공연을 둘러싼 관극 문화를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요즘 대학로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연극 ‘미러’(~9월 14일 예스24아트원1관) 역시 스포가 되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극 안에서 연극이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만큼 관객의 몰입이 작품의 본질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극장에선 관객들에게 따로 ‘스포 금지’ 요청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제작사 엠비제트컴퍼니는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리뷰를 쓸 때 후반부 전개나 반전 결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줄거리 요약 없이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중심으로 작성해 달라거나 연극적 장치에 대한 언급을 피해달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주의사항을 따르다보면 대본을 검열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밖에 쓸 수가 없다. 이 작품의 2023년 영국 초연 당시 현지 언론들도 “스포 없이 리뷰를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뜨거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고강민 엠비제트컴퍼니 대표는 “관객들이 작품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조용한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면서 “온라인에 공연 후기를 쓰는 분들도 이야기의 결말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관객들 사이에서 공연을 직접 보기 전까지 철저하게 후기를 피하다가, 관람 뒤에야 그동안 올라온 후기들을 쭉 읽는 게 유행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관객들의 자발적인 스포일러 방지는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반복 관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이야기를 아는 상태에서의 관람은 배우의 연기나 현장 특유의 분위기에 집중해서 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관객에게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엄현희 연극 평론가는 “‘2시간 22분’과 ‘미러’와 관련해 관객들이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능동적 침묵을 선택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면서 “이는 관객들이 다른 관객들의 감상을 위한 윤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것이 결국 작품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작품의 ‘스포 금지’는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도 작동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