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기아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식량 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같은 날 “가자지구에는 기아가 없다”고 주장한 것과 대조된다. 줄곧 네타냐후 총리와 의견을 같이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차를 나타낸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스코틀랜드 턴베리에 있는 본인 소유 골프장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식량 센터를 가자지구에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와 회담에서 가자지구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가자지구의 기아 문제가 정말 심각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식량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TV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몹시 배고파 보였다”며 “그것은 진짜 굶주림이며 이를 꾸며낼 수는 없다.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에 굶주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기아문제 인정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주목할 만한 입장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식량 위기 언급을 꺼려왔다. 이스라엘이 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하마스가 이를 차단하고 있다며 친이스라엘 기조를 유지해왔다.
지난 7일 네타냐후 총리와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기아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가자지구 종전과 구호품 제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가 뭐라 하든 중요하지 않다”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가 이처럼 기아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유럽 지도자들의 회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타머 총리와의 회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관세 협상 이후로 트럼프는 가자지구 기아문제에 관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세계 지도자들의 절박한 표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가자지구 기아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확산한 것 또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에게 가자지구 기아사태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이 21세기 인도주의 위기에 맞설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