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30년, “맨바닥 아닌 선배 어깨 위에 서게 해야”

입력 2025-07-29 09:54 수정 2025-07-29 13:56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해지는 풍경. 프리픽

10여 년 전, 40대 A선교사가 복음의 씨앗을 심겠다는 열정 하나로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했다. 그는 먼저 온 선배들의 지혜를 구하고자 직접 찾아갔지만, 돌아온 것은 “후원 교회는 있습니까?”, “땅 살 돈은 있고요?” 같은 냉담한 질문뿐이었다. 기존 방식에 기댈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맨땅에 헤딩’하듯 현지 청년들과 사역을 개척해 어렵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신과 달리 조용히 사라지는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A선교사는 은퇴를 앞둔 지금 어렵게 쌓은 노하우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막막해하고 있었다.

이 선교사의 고립감은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국민일보가 캄보디아 프놈펜과 캄폿주 현지에서 만난 여러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새로 온 선교사가 맨바닥이 아닌, 30년 역사 위에 서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2024 한국선교현황 보고’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지난해에만 45명의 신규 선교사가 파송된 최상위 선교지 중 하나로, 특히 50대 신규 파송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택한 국가다.

“고립된 섬을 연결하자”… 경험을 자산으로

주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KMAC) 김태권 회장은 “선교사 간의 연합과 소통, 전략의 부재로 인한 중복투자가 심각하다”며 “‘각개전투’가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2003년 자비량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와 2011년 아시아복음선교회(AGM) 선교사가 된 이후 프놈펜과 따께오 등에 ‘거룩한교회’를 개척했다.

김항철 선교사가 지난 25일 국민일보와 캄보디아 캄폿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28년간 캄보디아에서 사역해온 김항철 선교사는 선배의 순교 헌금을 기반으로 세운 ‘오형석기념센터’를 중심으로, 선교사들을 위한 공식적인 지원 허브 구축을 제안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으로부터 파송받은 김 선교사는 이 센터를 통해 현지 교회 개척과 지도자 양성 사역을 펼쳐온 캄보디아 선교 역사의 산증인이다.

김 선교사는 이러한 각개전투의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현장 선교사들은 ‘선교사 고령화’라는 또 다른 현실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었다. 그는 “은퇴 선교사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엄청난 자산”이라며 “이분들이 안식년을 맞은 후배들의 사역을 대신 지켜주거나, 지친 사모들을 위한 재충전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준다면 실질적인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인선교사회 차원에서도 김항철 선교사의 제안을 구체화하는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김태권 회장은 “제안된 멘토링 허브를 위해 프놈펜의 오형석기념센터 내 공간을 확보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구세군 선교를 총괄하는 김홍수 지역관이 지난 24일 캄보디아 캄폿주 구세군 캄폿영문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캄보디아 구세군 선교를 총괄하는 김홍수 지역관 역시 이러한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과거 선교 단체 내부의 모습이 선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정치’처럼 느껴져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선교의 더 큰 확장을 위해 건강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김 지역관은 “뜻이 맞는 이들이 함께하자는 진정성 있는 제안이 온다면 얼마든지 협력할 의향이 있다”며,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밝혔다.

선교 현장에서 한국교회에 보내는 제언

캄보디아 선교가 변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교회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여러 차례 파송 교회가 바뀌는 경험을 거쳐 현재 자비량으로 사역하고 있는 김 회장은 “필요하지 않은 건물을 세우고, 의미도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이로 인해 후원교회가 바뀔 때마다 교회 이름이 바뀌는 불행한 일도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캄보디아 캄폿주 한 농촌마을 초등학교 교실에 아이들이 가득차 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는 선교사를 초청하여 그 선교지의 상황이 어떠한지, 어떤 사역이 필요한지 들어주는 여유가 있기를 부탁한다”며 “한국교회가 뒤에서 선교사를 조종하는 순간, 선교지에서의 연합과 동역은 일어날 수 없다”고 호소했다.

프놈펜·캄폿=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