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백에 머무는 그림 묵상 …김희정 작가가 전하는 평안

입력 2025-07-29 06:00 수정 2025-07-29 06:00

한 여인이 조용한 시골길을 킥보드로 경쾌하게 달린다. 붉은 모자를 눌러쓰고 진청색 재킷에 흰 치마, 검정 운동화를 신은 채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그 위로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신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따뜻한 그림 묵상은 하나님의 완전한 타이밍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깊은 위로를 전한다. 하루를 기쁨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드는 메시지다. 이 묵상글에는 수천 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의 마음을 보탰다.

인스타그램에 그림 ‘숨’이라는 페이지를 통해 말씀묵상 일러스트를 연재하며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는 김희정(44) 사모를 지난 25일 충남 예산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사모는 “하나님의 숨결 같은 말씀 한 구절이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채널 이름을 ‘그림 숨’으로 정하고 2021년부터 연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 '숨' 작가 김희정 사모가 지난 25일 충북 예산군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상이 곧 묵상인 삶. 김 사모는 아이패드 하나를 들고 도서관이나 바닷가에 앉아 속상한 일, 답답한 마음, 감사한 순간, 간절한 바람 등 솔직한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그 안에서 받은 은혜를 그림으로 풀어낸다.

김 사모는 “어느 날 문득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거창하거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과 나눈 묵상이 정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글과 그림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며 “유일한 경험이라면 유치원 때 잠시 다녔던 미술학원이 전부고, 이후엔 유튜브를 보며 혼자 그림을 익혔다”고 털어놨다.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담은 표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다는 사실이 큰 격려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 사모의 그림 묵상은 때론 깊고, 때론 유쾌하다. 말씀 한 구절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조용히 되새기게 하다가도,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재치 있게 풀어내며 웃음을 자아낸다. 진지함과 따뜻한 유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그의 그림은 독자들에게 무겁지 않게 다가가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한 장의 그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은혜를 함께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연약함뿐이라고 고백했다. 20살에 친오빠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김 사모는 가난과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황하며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했던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는 “처음 교회를 갔는데 따뜻하게 환대해주는 교인들, 거칠었던 나와 달리 너무 착한 언어를 쓰는 교회 친구들을 보면서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인가’라는 생각을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낯설고 거칠던 삶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곳 그에게 교회는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자 집이 돼주었다.


김 사모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 방황을 멈추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했다”며 “그 시절 교회에는 믿음의 청년들이 함께 머물며 식사를 해결하고 예배하며 지내는 문화가 있었는데 나 역시 교회에서 먹고 자며 입시를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과정 중에 집사님들의 따뜻한 돌봄과 사랑이 큰 힘이 됐고 복음으로 나는 새사람이 됐다. 사도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씀이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며 “예수님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진리를 그때 온전히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청년시절 세 살 위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사역자의 길을 걷는 남편을 따라 사모로 부르심을 받았다. 30대가 돼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또 사모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김 사모는 “청소년 시절,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자라면서 ‘내가 과연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고 양육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며 “그런데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생각보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새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셨고 그분이 부어주신 사랑이 나를 완전히 변화시키셨다”고 말했다.

2017년 목회자인 남편과 함께 충남 홍성으로 내려온 김 사모는 두 자녀와 함께 고요하고 따스한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며 적은 사례비로 묵묵히 헌신하던 남편을 대신해 그는 블로그에 ‘땅지공방’이라는 작은 온라인 공간을 열었다. 일러스트, 스케치 액자, 캘리그라피 말씀, 푸드 그림까지 잔잔한 위로와 따뜻한 정서를 담아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온라인을 통해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과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김 사모는 올해 출판사 ‘토기장이’와의 말씀카드 협업은 물론 성경 묵상 애플리케이션 ‘쫑끗’, 뮤지컬 ‘요한계시록’의 굿즈 제작에도 참여하게 되며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뜻깊은 작업에 함께하고 있다.

그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과 채우심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며 “내가 가진 재능은 크지 않고 부족함도 많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때로는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참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고 그 사랑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럽고 행복한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4년 동안 이어온 부교역자 사역을 내려놓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게 된 남편과 함께 요즘 성경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가정을 통해 일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순종의 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했다.

김 사모는 “‘100세 인생 그림책’을 인상 깊게 봤는데 태어나서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의 신앙 여정을 그림으로 풀어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언젠가는 그런 그림책도 그려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그림을 통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