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재개발 관련 임시거주시설 이용 규칙을 두고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규칙에는 쪽방촌 주민들이 밤 시간대 친구 초대를 금지하거나 공용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를 어길 시 퇴거 조치까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2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가 배포한 시설 공동생활규칙에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세탁실과 주방, TV를 이용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오후 9시 이후 친구 등 손님 초대도 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휴대반입한 물건을 잘 살펴 시설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처럼 다소 추상적인 조항도 들어있다.
2020년 시작된 영등포쪽방촌 재개발 사업은 영등포역 일대 쪽방촌을 재개발해 주민들의 재정착을 돕겠다는 취지로 계획됐다. 주민들은 지난 11일부터 이주 절차를 시작한 상태다. 사업 마무리 시점은 현재 기준 2029년으로 예상되는데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쪽방촌 주민들은 최소 4년 이상 불편을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쪽방촌 주민 조모(55)씨는 “사람이 사는 곳인데 친구를 못 오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굳이 각종 제한이 있는 곳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이모(70)씨도 “교도소도 아니고 오후 9시부터 각종 제한을 왜 걸었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규정에 나온) 이런 문제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건물을 지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조항을 반복해서 어길 경우엔 주의나 벌점을 받을 수 있고 누적되면 퇴거조치될 수도 있다. 손님 초대나 이용 시설에 대한 시간 제한 조항은 주의 조항에 해당한다. 주의는 3번 받을 경우 벌점 1점이 부여된다. 반려동물 관련 조항은 벌점 1점, 시설 안전 위해 관련 조항은 벌점 2점이다. 벌점 10점이 되면 강제퇴거 조치된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 부위원장)는 “주거권 제한은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벌점 누적식으로 퇴거 조치까지 가능하도록 설정돼 있다”며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쪽방촌 주민 중 고성방가를 한다거나 저장 강박이 있는 경우를 감안해 만든 규칙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계도 목적으로 설정한 것이지 퇴거까지 생각하고 만든 규정은 아니다”라며 “시간을 뒤로 늦추고 모호한 규정을 구체화하는 등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