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은퇴, ‘69의 영’ 넘어 ‘리스타트’로 새 사명 찾는다

입력 2025-07-28 14:55 수정 2025-07-28 22:15
게티이미지뱅크

“평생을 주님께 헌신했는데 이제 와서 노후 준비를 못 했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35년간 목회해온 김성준(가명·73) 목사의 고백이다. 그는 적은 사례비를 쪼개가며 교회 일에 솔선수범했고 강단에서도 정직하게 힘써왔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60대 후반이 되자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을 인식했다.

“성도들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어요. 어떤 분들은 ‘목사님이 그동안 노후 준비를 왜 안 하셨느냐’고 차갑게 말씀하시더군요. 반면 ‘목사님 그동안 애쓰셨으니 교회가 일부라도 부담하겠다’고 반응해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김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주변 목회자들에게 털어놓으니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다반사였다”며 “은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69세를 맞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69의 영’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부른다”고 전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목회자의 은퇴 준비가 아직 생소하고 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28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김정석 목사) 광화문본부 사무실에서는 이런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방향이 제시됐다. 장성배 감신대 선교학 교수가 저술한 ‘리스타트: 목회자 은퇴 준비 셀프 코칭 매뉴얼’의 1000권 기증식이 열렸다.

장 교수는 “장수 시대를 맞아 목회자도 1년생 식물에서 다년생 식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은퇴는 끝이 아니라 제2의 삶을 시작하는 리스타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들도 사회 변화와 초고령화 시대에 맞춰 다년생 식물로 자신을 바라보며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엠센터 소장 장성배 감신대 교수. 신석현 포토그래퍼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닌 실용적인 셀프 코칭 길잡이다. 책의 핵심은 ‘평생 사명자’와 ‘만인 사명자’ 개념이다. 은퇴 후에도 사명은 계속되며 이제는 평신도로 혹은 선교사로 자유롭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책은 총체적인 자기 점검 시스템인 ‘14번의 셀프 점검 도구’를 통해 목회자들이 자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셀프 코칭’과 ‘셀프 워크숍’ 방식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기증은 단순한 도서 전달이 아닌 기감 내 목회자 은퇴 준비 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장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엠센터(M-Center)는 기감과 공동 협력을 통해 50·60세대 목회자들의 은퇴 준비 네트워크와 70·80 은퇴 목회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추진할 예정이다. 엠센터는 2000년 감리교신학대 부설 연구소로 시작해 미자립교회 극복 프로젝트, 메타버스 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신중년 크리스천’과 ‘목회자 은퇴 후 사명자로 살기’ 이슈를 교단 은급부와 계획하고 있다.

최범선 엠센터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70세 은퇴해도 30년 이상 보람있게 살아야 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전달식에 앞서 기독교대한감리회교역자은급재단 과장 김성산 목사는 교단 내 은급제도 등을 설명했다. 현재 기감 은급제도는 1984년 시작됐으며 목회 연수에 따라 최대 월 80만원을 지급한다. 개인연금이 아닌 교회가 경상비 2.2%를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은퇴 목회자의 사망 시 배우자에게 50%인 40만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지급되는 은급액은 현실적인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은퇴 준비를 못 하는 목회자들이 워낙 많다”며 “최근 이중직이 허용되는 등 변화가 있지만 은퇴 후 삶에 대한 새로운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