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실적 악화와 관세 불확실성으로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사이, 한국만은 예외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구찌 등 명품 기업들의 실적은 중국 소비 위축과 미국 관세 압박, 유럽 경기 둔화라는 삼중고에 줄줄이 하락세다. 신중한 분위기에도 국내서는 ‘N차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이 명품업계의 ‘현금 창고’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대기업 LVMH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 줄어든 90억 유로, 매출은 4.3% 감소한 398억 유로였다. 가죽제품·의류 매출도 7.7% 감소한 191억 유로에 그쳤다. 몽클레르는 2분기 매출이 1% 줄며 월가 예상치를 7% 하회했다. 월가에 따르면 구찌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매출은 17%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원인은 ‘큰손’ 중국의 부진이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명품 시장은 전년 대비 20% 역성장하며 2011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글로벌 명품 시장 역시 올해 최대 5%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적이 꺾이자 명품업계는 가격 인상에 숨을 고르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명품 브랜드 평균 인상률은 3%로, 2019년 이후 최저다. 팬데믹 시기 ‘울트라 인상’과 비교하면 달라진 분위기다. 롤렉스(12%)와 에르메스(6%) 등을 제외하면 루이비통, 프라다, 디올, 보테가베네타, 생로랑 등 대부분 브랜드는 평균 인상폭이 2% 내외에 불과했다.
한국은 다르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올해 초부터 국내에서만 가격을 연이어 크게 올리고 있다. 디올은 지난 1월 주얼리 가격을 6~8% 인상한 데 이어 이달에도 3~5% 추가 인상했다. 프라다는 지난 2월에 이어 이달에도 일부 제품별 가격을 5~7%씩 올렸고, 에르메스는 지난 1월과 3월 가방과 액세서리 등 주요 품목 가격을 두 차례에 걸쳐 최대 10%까지 올렸다.
한국만 유독 인상 폭이 큰 배경엔 원화 약세가 있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으로 환율이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날 기준으로도 1380원대를 유지하며 고환율이 지속 중이다. 금값 상승까지 겹치며 브랜드 입장에선 수입 원가 상승을 가격 인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다. 최근 아시아 명품 브랜드 유통업체 블루벨 그룹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73%가 “가격이 올라도 명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명품을 ‘투자 상품’으로 본다는 인식도 76%에 달했다. 모건스탠리는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가 325달러로, 중국(55달러)과 미국(280달러)을 앞섰다고 분석했다.
한편 관세 리스크에 대응해 명품업계는 공급망 전략 재편에 나섰다. LVMH의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최근 “2027년 초까지 텍사스 댈러스 인근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적 부진 속 LVMH는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 매각도 검토 중이다. 예상 매각가는 10억 달러 수준이다.
구찌는 한국 내 부진 타개를 위해 대표 교체 카드를 꺼냈다. 지난 3월 루이비통 출신 엠마누엘 델리외가 신임 대표로 선임됐지만,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쏠림이 뚜렷한 국내 시장에서 구찌의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