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공연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팬덤 위주의 관람 문화다. 관객들이 낯선 해외 아티스트보다 친숙한 한국 아티스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국내 뮤지컬계의 경우 오리지널 내한 뮤지컬보다 인기 있는 한국 배우를 캐스팅한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 성적이 좋다. 하지만 올여름 한국을 찾았거나 찾을 예정인 ‘위키드’ ‘위대한 개츠비’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내한 뮤지컬 3편은 개막 전부터 티켓 예매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등 관심을 끌고 있다. 3편이 각각 관객을 유혹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뮤지컬 ‘위키드’- 영화 ‘위키드: 포 굿’ 결말 알고 싶다
‘위키드’(~10월 26일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는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200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무대화한 뮤지컬이다. 원작 소설과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 뮤지컬은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초록 피부의 엘파바와 착한 마녀로 알려진 금발의 글린다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로 각색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1995년 출간된 머과이어의 소설은 원래 뮤지컬이 아닌 영화로 먼저 만들어질 뻔했다. 뮤지컬 ‘가스펠’ ‘피핀’과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노트르담의 꼽추’ ‘이집트 왕자’ 등의 작곡가 겸 작사가 스티븐 슈워츠가 소설을 보고 흥미를 느껴 1998년 머과이어와 무대화 판권을 계약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먼저 영화화 판권을 계약한 상태였는데, 슈워츠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설득해 공연 제작에 참여시켰다.
2003년 초연된 뮤지컬은 12.4m 의 거대한 용, 날아다니는 원숭이, 350여 벌의 의상 등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무대 매커니즘과 넘버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 ‘파퓰러’(Popular), ‘포 굿’(For Good)은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 17개국에서 7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첫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열렸으며 이후 2013~2014년, 2016년, 2021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관객과 만났다.
13년 만의 내한공연으로 만나는 ‘위키드’는 지난 12일 개막 이후 빈 좌석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미 여러 차례 이뤄진 국내 공연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기는 지난해 뮤지컬을 실사화한 영화 ‘위키드’가 개봉한 영향이 크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가 두 여주인공을 맡은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 ‘위키드’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오는 11월 개봉하는 영화 ‘위키드: 포 굿’은 뮤지컬 2부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내에서 극장 개봉 관객만 224만명이었던 영화 ‘위키드’ 관객 가운데 앞서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번에 많이 찾는다는 게 기획사 에스앤코의 분석이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 올라간 K뮤지컬 궁금하다
‘위대한 개츠비’(8월 1일~11월 9일 GS아트센터)는 미국의 고전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원작은 1920년대 물질주의가 만연했던 뉴욕을 배경으로 백만장자 개츠비의 삶과 사랑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절망을 담았다. 1925년 출간된 원작 소설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진 바 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인 프로듀서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리드 프로듀서(Lead Producer)는 프로덕션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를 책임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인이 단독으로 맡는 것은 신 대표가 처음이다. 국내 뮤지컬계는 최근 국제적 협업이 많은 뮤지컬 제작의 특성상 ‘위대한 개츠비’처럼 리드 프로듀서가 한국인이거나 ‘어쩌면 해피엔딩’처럼 창작진 가운데 한국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 K뮤지컬에 포함하고 있다.
신 대표는 작가 피츠제럴드 사후 8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리는 2021년을 겨냥해 원작의 뮤지컬화를 꾸준히 추진했다. 그리고 극작가 케이트 케리건, 작사가 네이슨 타이슨,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 등 창작진이 참여한 프로덕션은 미국에서 트라이아웃, 프리뷰 등을 거쳐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서 공식 개막해 오픈런 공연 중이다. 또 영국 런던에서 지난 4월 11일 개막해 9월 7일까지 콜리세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번에 서울에서 개막하면 3개국에서 동시에 작품이 공연되는 셈이다.
이 작품은 1920년대 미국의 화려함을 담아낸 무대와 의상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재즈를 기반으로 한 세련된 음악과 군무를 자랑한다. 지난해 토니상 의상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평단은 원작의 깊이를 담지 못했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화려한 무대 등 볼거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번 서울 공연은 그동안 기사로만 접했던 K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직접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팬들의 관심이 높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샹송 감성은 프랑스어로 들어야 제맛
‘노트르담 드 파리’(9월 3~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앞선 두 작품이 미국 뮤지컬인 것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집필한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15세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꼽추 콰지모도, 신부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편견, 사회의 부조리를 담았다.
작곡가 리카로드 코치안테, 작사가 겸 대본가 뤼크 프라몽동, 연출가 질 마으 등이 손잡고 1998년 파리에서 선보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초연 직후 프랑스 국민 뮤지컬의 반열에 올랐다. 수록 넘버 ‘벨’(Belle, 아름답다)은 무려 44주간 프랑스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30개국에서 9개 언어로 공연돼 누적 관객 150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2005년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프랑스 뮤지컬은 대사 없이 노래로 전개되는 ‘성스루’(Sung-Through) 형식이다. 그리고 배우가 노래와 춤, 연기를 함께 하는 영·미 뮤지컬과 달리 가수와 무용수로 구분된 배역을 운용한다. 국내 초연 당시 영·미 뮤지컬과 다른 프랑스 뮤지컬만의 매력을 한국 관객에게 각인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다른 프랑스 뮤지컬이 잇따라 소개됐지만, 국내에서 레퍼토리로 살아남은 것은 ‘노트르담 드 파리’뿐이다.
이 작품은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6번의 내한 공연과 6번의 라이선스 공연이 이뤄졌다. 국내에서 공연된 외국 뮤지컬 가운데 내한 공연이 가장 많이 이뤄진 것은 한국 관객이 프랑스어 버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샹송 느낌의 뮤지컬 넘버가 프랑스어로 불릴 때 특유의 진한 감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 버전의 내한 공연은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국내 초연 20주년을 기념한 이번 투어에는 프랑스 초연부터 27년 이상 프롤로 역을 연기해온 전설적인 배우 다니엘 라부아가 참여하는데, 사실상 고별 공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