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마음’ 김지우 “돌봄은 주고받는 얽힌 관계,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입력 2025-07-25 10:36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으로 활동 중인 김지우씨가 지난 15일 서울청년센터 성북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장애 있는 언니들이 알려주는 생리 이야기’ ‘미국 학교 유일한 한국인 장애인 여학생, 나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 ‘못 걸어도 서핑은 할 수 있어’…

장애 여성 크리에이터 ‘굴러라 구르님’으로 활동 중인 김지우(24)씨의 영상에는 일상의 경계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휠체어를 꾸미거나 서핑을 배우기도 한다. 그 여정을 차곡차곡 아카이빙한 유튜브 채널은 어느덧 10만 구독자를 앞두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한 건 2017년 고등학생 때였다.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겠다”며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8년 동안 그 약속을 지켜왔다.

김씨는 최근 여행기이자 자아 탐색기인 책 ‘의심 없는 마음’을 펴냈다.가족과의 일본 여행부터 아버지와 함께한 대만·마카오·홍콩, 친구들과 다녀온 프랑스·스위스, 어머니와의 독일 여행, 마지막으로 홀로 떠난 6주간의 호주 여정까지, 책에는 각기 다른 관계와 장소에서의 경험이 담겼다. 다음은 김씨와 나눈 책 ‘의심 없는 마음’에 대한 일문일답.

-이번에 낸 책 이름이 ‘의심 없는 마음’이다. 이 말이 처음으로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아마 호주에서 서핑을 했던 경험이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지우는 몸이 불편하니까 이런거 하지 마’라는 말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의심 없는 마음’ 안에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는 달랐다. 장애 학생에게 학교는 ‘넌 못하는 게 당연해’라는 걸 배우게 되는 공간이었고, 저도 모르게 ‘이건 나는 안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런데 호주 해변에 서자 아무도 제가 서핑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저에겐 굉장히 낯설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의심 없는 마음’이라는 말이 제게 정말로 필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으로 활동 중인 김지우씨가 지난 15일 서울청년센터 성북에서 최근 출간한 책 ‘의심 없는 마음’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호주 토르케이 해변에서 ‘아무도 나의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를 경험한 뒤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책에도 나오지만, 난생 처음 해외 여행으로 일본을 갔을 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못 했을까’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근데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닿더라. 어릴 땐 그런 생각을 막기 위해 스스로 ‘난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끊임없이 말해줬다. 장애 아동에게 자주 쓰는 표현처럼 말이다. 그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갑옷이었다.

어느 순간 그런 긍정적인 갑옷이 필요 없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공식 행사 같은 데서 배제당했을 때 ‘그래도 난 특별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그런데 호주처럼 어떤 공간에선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더라. 그때 느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도 참 좋았다.

물론 여전히 장애인으로서 활동할 책임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마음은 있다. 그게 싫지도 않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 책임도 없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이 저한텐 해방감이었다.

-책에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지 않고 그들 혹은 그분들이라고 말할 때 마음이 무너졌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분명히 ‘우리’라고 해야 할 순간에 ‘그분들’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정말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까?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맞을까? 그런 의문이 든다. 특히 정치권의 언어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그 표현 자체가 이미 선을 긋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약자’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결국엔 ‘내가 약자들과 함께해주겠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그 말에는 권력의 위계가 배어 있다. 저는 그냥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고 동료일 뿐인데 자꾸만 말 한마디로 경계선이 생기는 기분이다.

-책에서 호주 멜버른 ‘미드섬마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경험을 나누면서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간단한 경사로나 장애인 서비스 부스가 훨씬 더 강력한 안정감을 준다”고 적었다. 장애인을 위한 변화가 배려가 아니라 구조의 기본값이 되려면 어떤게 필요게 필요할까.
저는 그게 무관하지 않다는 감각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동물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본인이 동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지않나. 그건 결국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의 고통이지만, 어딘가로 연결돼 있다는 감각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각을 갖고 있을 때, 단순한 경사로나 부스 하나가 ‘여기에 나와 다른 몸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그 사람이 여기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 구조다. 저는 그게 배려가 아니라 ‘우리’를 전제로 한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낸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에서는 어머니를 ‘쌈닭’으로 묘사했는데, ‘의심 없는 마음’에서는 ‘겁먹은 햄스터’가 되셨더라. 그 변화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나.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엄마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예전엔 엄마가 저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쌈닭’이라고 표현했는데, 독일에서 보니 그냥 겁이 많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낯선 땅에 와서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엄마가 독일에서 딸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걸 보면서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나를 키운걸까’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엄마는 늘 ‘얘를 지켜야 해, 재활시켜야 해’ 같은 사명감으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제가 어느 순간 “이젠 재활 안 해도 돼. 걷지 않아도 괜찮아. 나 그냥 나가서 살래”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중심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셨을 거다.

-이번 책에서는 ‘돌봄’ 역시 중요한 키워드 같다.
사실 장애가 있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번 책에서 제일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도 ‘돌봄’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돌봄이 ‘일방향’일거라고 생각한다. 설령 엄마가 절 돌보는 양이 100이고, 제가 엄마를 돌보는 양이 1이라 해도, 그건 서로 맞물려 있는 거다. 만약 제가 그 돌봄을 거부했다면, 엄마는 상실감을 느꼈을 거다. 돌봄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얽히고설킨 ‘관계’ 그 자체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어떤 이야기로 읽어주었으면 하는지.
이 책을 그냥 장애인의 여행기로 읽기보다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책에는 저와 엄마뿐 아니라,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들어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는 남자친구도 저를 돌봤고, 저도 남자친구를 돌봤다. 그래서 이건 결코 ‘케어기버(caregiver)’와 ‘수혜자’의 이야기로만 읽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무게가 있고, 물성이 있다.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무게를 서로가 안고 살아가는 거다. 앞으로도 저는 이 돌봄에 대해 더 많이 더 깊게 이야기하고 싶다.


김씨와의 보다 자세한 인터뷰 전문은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