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시장 개방을 하는 나라에는 관세를 인하해주겠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훨씬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보다 시장 개방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 관세 부과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발언으로 미국과 막판 협상 중인 한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서밋 행사에서 “관세는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더 중요할 수 있다”며 “시장 개방은 관세 몇 퍼센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무역 상대국이 미국에 관세·비관세장벽을 없애 시장을 개방하면 미국도 관세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우리는 유럽연합(EU)과 심각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그들이 미국 기업에 (시장을) 개방한다면 관세를 낮춰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도 시장 개방을 강조하며 “일본 시장은 이제 처음으로 개방됐다. 미국 기업은 번영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별도 게시물에서 “나는 주요 국가들이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도록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관세 포인트를 포기할 것이다. 이것이 관세의 또 다른 위대한 힘”이라며 “관세 없이는 다른 나라들이 시장을 개방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에는 언제나 ‘제로(0) 관세’여야 한다”고 적었다.
트럼프의 발언은 전날 일본과 합의한 무역협정을 통해 일본의 쌀과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게 된 점을 부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며 “자동차, SUV, 트럭을 비롯해 심지어 농업과 쌀까지도 포함된다. 과거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았던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방된 일본 시장은 관세 자체만큼이나 큰 이익이지만, 이는 관세의 힘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다음 달 1일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최근 타결된 협상에서 무역 상대국의 시장을 개방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일본이 시장을 개방하자 상호관세를 10%포인트나 인하한 15%로 결정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인도네시아와의 협상 타결에서도 시장 개방을 부각한 바 있다.
백악관은 이날 일본과의 협상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 미일 간 전례 없는 전략적 무역·투자 협정 체결’이라는 설명자료에서 일본의 대미 투자액 5500억 달러가 미국의 핵심산업을 재건하고 확장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신규 조선소 건설과 상업·국방 선박 건조, 제약 및 의료 제품 생산, 핵심 광물 채굴·가공·정제, 미국의 반도체 제조 및 연구 역량 재건,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인프라에 집중된다.
백악관은 또 “이번 협정은 주요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개방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하며 미국산 자동차·트럭에 대한 오랜 수입 제한이 해제되고, 미국의 자동차 기준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승인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옥수수와 대두, 비료, 바이오에탄올 등 80억 달러 상당의 미국 농산물도 구매한다고 홍보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오랫동안 닫혀 있던 시장을 개방해 누구도 해내지 못한 협정을 다시 한번 성사시켰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도 미·일 합의를 참고삼아 협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공항에 도착해 “지금 (미·일 합의를) 면밀히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 살펴보고 있다”며 “참고할 수도 있고, 비교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에 이어 24일에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을 찾는다. 특히 25일에는 구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2+2’ 통상 협의도 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