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업체들이 미국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국 해양 패권 저지, 미국 조선 인프라 재건 기조 등에 따라 수요 증가가 예상되자 미국 현지 생산 및 현지 업체와의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조선업계는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의 반사이익을 노려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HD현대는 미국 내 선박 건조 협력 파트너인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사와 미국 내 컨테이너 운반선 공동 건조를 위한 세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23일 밝혔다. ECO는 미국 내 5개의 상선 건조 야드를 보유한 조선 그룹사로 현재 해양 지원 선박 300척을 직접 건조해 운영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슈에스트 ECO 대표는 회동에서 컨테이너 운반선을 공동 건조하고, 향후 사업 기회 공동 발굴 등 협력을 확대한다는 뜻을 모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HD현대는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위한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 현지에서 이뤄지는 양사간 선박 공동 건조 작업은 한·미 조선 협력의 훌륭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최근 미국 현지 조선소와 잇따라 ‘동맹’을 맺으며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HII)와도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화그룹도 미국 현지화 전략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1377억원)에 인수했다. 최근 미국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가 한화그룹의 해운 계열사인 한화해운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수주하기했다. 한화오션은 앞으로 필리조선소 확장 및 추가 조선소 확보 등에 8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한화그룹은 호주계 조선기업 오스탈 인수도 추진 중이다. 오스탈은 미국 해군 함정을 직접 건조하는 4대 핵심 공급업체 중 하나다. 미국 내 소형 수상함, 군수지원함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40~6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국내 조선업계에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해양 행동계획 수립, 해양안보 신탁 기금 설립, 동맹국을 통한 적대국(선박) 의존도 감소, 중국산 선박·장비 제재, 미국 국적 상선 확대 등이 골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사·선주 소유 선박, 중국 건조 선박 등의 미국 입항시 추가 수수료 부과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미 시장을 새로운 전략 거점으로 삼고,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조선 생태계 재편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며 “상선, LNG 운반선, 해군 군함 등 다양한 분야에 공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