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가 고개 숙여 사과...61년만에 무죄 구형 받은 70대 여성

입력 2025-07-23 14:42 수정 2025-07-23 18:20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이겼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은 70대 여성이 재심 첫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받았다. 이날 검찰에서는 부장검사가 직접 법정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23일 법원에서 최말자(78)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과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본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부산지검에서는 정명원 공판부 부장검사가 이례적으로 직접 법정에 나와 구형했다. 정 부장검사는 최 씨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님’이라고 칭했으며, 최씨를 향해 고개도 숙였다.

그는 “재심 개시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부터 법률 판단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재검토했다”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자 최씨는 법정을 나서면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손을 치켜들며 “이겼습니다”를 세 번 외쳤다. 최씨의 재심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과 여성단체 회원들은 최씨가 “이겼습니다”를 외치자 박수를 보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변호인과 여성단체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씨는 공판 이후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고 만감이 교차한다”며 “여성의 전화, 변호사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응원 때문에 제가 이 자리까지 왔다. 모든 게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무죄를 구형하며 사죄한 것에 대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분명히 제 귀로 사과하는 것을 들었고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까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만 18세이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 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되게 한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씨에게는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최씨는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불법 구금을 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최씨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최씨 주장이 맞는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고, 당시 재심 대상 판결문·신문 기사·재소자 인명부·형사 사건부·집행원부 등 법원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재심 재판부인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오는 9월 10일 오후 2시 선고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