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는 실감이 들게 하는 풍경이 있다. 바로 경기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이다. 3학년 학생들이 재치 있고 기발한 분장을 한 채 촬영하는 졸업사진은 단순한 학교 행사를 넘어, 한 해의 사회적 이슈와 문화 트렌드를 집약해 보여주는 일종의 ‘시사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2009년 무렵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매 해 공개될 때마다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콘텐츠가 됐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생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졸업사진들이 SNS를 통해 공개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23일 의정부고 학생자치회 공식 SNS 계정에는 의정부고 방송부(UHBS)가 촬영한 사진과 학생들이 제보한 약 95장의 졸업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 속 학생들은 유명 인물, 영화·드라마 캐릭터, 유튜버, 밈(meme) 등을 패러디하며 의정부고만의 전통을 이어갔다.
올해 특히 주목받은 사진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BJ 과즙세연을 패러디한 장면이다. 지난해 8월 두 사람이 미국 LA 베벌리힐스 거리 풍경을 담은 한 유튜브 영상에 우연히 찍힌 모습을 따라한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인기 캐릭터들도 빠지지 않았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패러디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어린이 관객에게 인기를 끌며 누적 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영화 ‘사랑의 하츄핑’을 재현한 학생도 있었다. 분홍색 가발과 옷, 왕관, 하트 장식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며 하츄핑을 현실로 소환했다.
SK텔레콤의 해킹 사태를 풍자한 사진도 등장했다. 한 학생은 한 손에는 SK텔레콤의 로고를 들고 머리에는 거대한 유심칩 모형을 씌워 스스로 유심이 된 모습을 연출했다. 해킹 피해자의 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하며 시사 이슈를 유쾌하게 풀어내 눈길을 끌었다.
넷플릭스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속 ‘빠스’ 장면을 패러디한 학생도 눈길을 끌었다. 흰 셰프복 차림에 진지한 표정까지 더해 정지선 셰프 특유의 분위기를 재치 있게 재현했다. 작년 전 세계를 달군 명장면을 졸업사진으로 소환한 셈이다.
의미 있는 시도도 있었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콘셉트로 찍은 졸업사진도 등장했다. 학생들은 분장을 넘어선 존경의 표현으로 역사적 인물을 기억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