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갇힌 백구, 친구 지킨 황구…종교학 교수의 유기견 이야기 [개st상식]

입력 2025-07-23 11:32 수정 2025-07-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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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개에게 배운다'의 저자 김나미씨가 임시보호 중인 유기견 '둥이'를 품에 안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병준 기자

대학 강단에서 종교와 철학을 가르치고 온갖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며 얻은 깨달음을 칼럼으로 기록하던 교수가 돌연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동물보호 활동가로 변신했습니다. 이색적인 이력의 주인공은 종교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김나미씨입니다.

본래 그는 30여 년간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종교의 존재 이유를 탐구하고 사색의 결과물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종교학 교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동물보호단체 세이브코리언독스를 설립해 지난 15년간 3000마리에 달하는 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다 입양 보내게 됩니다. 보호소를 혼자 꾸려나가는 일은 고된 일이어서 김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수직을 내려놓고 칼럼 연재도 중단했습니다.

그는 어쩌다 이런 큰 결정을 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신간 ‘개에게 배운다’에 나옵니다.

“신(God)이라는 단어가 뒤집혀 개(Dog)가 됐다는 표현에는 내 삶의 전환점이 담겨 있다.” (P.93)


2012년 태국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난 장애견 '보디'와의 인연은 김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원래 보디는 장애로 인해 걷지도 못하고 사람을 피하던 개였는데요. 그런 보디가 눈에 밟힌 그는 1년간 꾸준히 보호소에서 봉사하며 보디를 돌봤고, 그런 노력 덕분에 보디는 마침내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 외에도 견주가 산채로 가마솥에 넣어 큰 화상을 입었음에도 사람을 따르는 백구 밀키, 교통사고를 당해 숨진 친구를 곁에서 헌신적으로 지키던 황구 천운이 등 여러 사연의 개들과 교감하며 김씨는 학문에서 찾지 못한 진리를 개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개들은 현재에 충실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욕심을 버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런 가치들은 모든 종교와 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p96)

1인 가구 비중이 늘고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23년 전미 반려동물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인의 66%가 반려동물을 기르며, 2024년 프랑스 반려동물사료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61%가 반려동물과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농림수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 17.4%였던 반려동물 양육인구 비율은 2024년 기준 28.6%로 늘었습니다.

현대인들이 반려견에게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씨는 철학자의 시선에서 고찰한 뒤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이런 순수한 헌신을 찾기는 쉽지 않다…개는 성별과 견종을 불문하고 서로의 고단한 생활에 힘이 되어준다(p79)”. 현대인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신뢰, 이타적 본성, 충성 등 관계적 가치를 갈구하기 마련인데 인간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믿음을 베푸는 개에게서 관계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개를 학대하고 유기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김씨는 2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교철학적으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동물은 그보다 못한 존재이자 도구적 역할을 강요받았다”면서 “여전히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동물이 많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김씨는 책 판매 인세 전액으로 사료를 구입해 유기동물 보호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물을 애완 내지 위로의 수단으로 볼 것이 아니라 비인간 인격체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