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잠만 자는 여학생

입력 2025-07-23 09:13

여고생 A는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 누워서 잠만 잔다. 학교나 학원을 가는 시간을 빼고는 의미 없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빈둥거린다. 그러면서 시험 기간에는 동동거리며 불안해한다. 특히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면서 자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시험 때는 학원도 힘들다면서 가질 않는다.

부모가 힘을 내서 취미를 가져 보거나 운동을 해보라고 해도 ‘무기력해서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사실 우울해지면 에너지가 없어 무언가를 할 때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더욱 우울해진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니 더 불안하면서 다시 우울감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아이를 두고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어’하는 등의 조언은 아이를 더 화나게 하고, 부모와 더 멀어지게 만든다. 사실 아이의 마음속에도 이런 자신에게 하는 ‘간섭하고 조언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있다. 자신에게 ‘왜 그것도 못하니? 힘을 내서 일어나봐. 그리고 움직여봐’ ‘이렇게 살다가는 형편없는 사람이 될 거야’ ‘바보같이 이렇게밖에 행동을 못 하는 거니’라고 스스로 반복적으로 말한다.

이처럼 무기력하게 지내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아예 목표나 꿈이 없는 경우와 꿈을 향해 가는데 존재하는 내적 방해물과 외적 방해물이 존재하는 경우다. 내적 방해물은 생각과 감정, 행동과 같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다. 즉 활동할 기분이 아니라는 생각, 게임이나 SNS 등 더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것에 대한 충동, 반복해서 곱씹으며 빠져드는 생각(반추), 반복되는 걱정,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등을 말한다. 외적 방해물은 외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사건이나 주변의 지원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등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방해물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환경적으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들의 무기력감, 우울에는 내부 방해물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A가 시험 기간에 불안해한다는 건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침대에 누워서도 잠만 자는 것은 아니고, 자다가 깨서 계속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계획은 거창하게 짜곤 한다. 하지만 곧 ‘나는 바보야, 어차피 해낼 수 없을 거야. 너무 늦었어’라는 생각이 자신을 끌어내린다. 내적 방해물이 존재한다는 거다.

긍정적인 면은 그녀에게 목표가 있다는 거였고, 부정적인 면은 그것을 해나가는 데 내적 방해물이 크다는 거였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도저히 행동에 옮길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내적 방해물을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생각과 감정을 이겨내는 것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라는 전제를 갖고 힘듦을 공감해 주자. 그리고 그런 기분과 생각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게 두지 말고, ‘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를 상상하자. 그러면 생각과 기분은 나의 일부(전부가 아닌)가 된다. 바둑판의 바둑알 바라보듯이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듯이 생각과 기분을 바라보고, 때로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 생각과 기분은 나를 거쳐 흘러갈 뿐이니, 우울하고 무기력하지만 그걸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해보자. 기분이 나아질 뿐 아니라 활력도 좋아진다.

생각과 감정을 대하는 기술을 연습하지 않고, ‘그냥 활동해라, 취미를 가져라’라는 말은 A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천천히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면서 행동하도록 돕는다면 천천히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성인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