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주일본 대사관에 육군 무관으로 파견 당시 한 선배가 권유해서 예의상 교회를 한 번 나갔어요. 선교사님이 천진난만하게 ‘다음 주에도 오시죠’라고 물으셔서 거절하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나갔더니 어느새 제가 바람과불꽃교회에 정착해 있더라고요.”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 그중에서도 대사관 직원과 기업 주재원이 밀집한 도쿄 메구로구에서 유태호·강행숙 부부 선교사가 세운 ‘바람과불꽃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한 박종근 집사는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화곡순복음교회(김성호 목사)에서 열린 제자 모임에서 일본 현지 근무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방한해 모임에 참석한 유 선교사도 “35살까지 다른 종교에 깊이 빠져있던 터라 양육 훈련 내내 쉽지 않은 성도님이었는데 지금은 신대원까지 다닌다고 하니 정말 감격스럽다”고 화답했다.
일본 복음화를 위해 뒤늦게 서원한 늦깎이 선교사 부부는 박 집사와 같은 제자들과 지난 19년 동안 일본에서 교회 7곳을 세웠다. 이들은 매년 7월 셋째 주 ‘바람과불꽃교회 한국 아웃리치’라는 이름으로 모여 신앙의 여정을 나누고 있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 열린 이날 모임에도 80여명이 참석했고 일본 선교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 그리고 서원
유 선교사 부부는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각각 사회와 일본어를 가르쳤다. 48세와 45세의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한 두 사람은 일본 동경 메구로구로 건너가 2007년 3월 ‘주님의 사신과 사역자가 되는 교회 공동체(시 104:4, 히 1:7)’라는 의미를 담아 가정집에서 ‘바람과 불꽃교회’를 설립했다. 이는 8년 전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께 드린 유 선교사의 서원을 지키기 위한 순종이었다.
유 선교사는 결혼 전 신앙 좋은 아내를 만나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해놓고 결혼 후에는 오히려 교회를 멀리했다. 한 겨울에 수요예배와 금요철야를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며 핍박하기도 했다. 이는 가정불화로 이어졌다.
강 선교사는 “우리 가정은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사람이니 내가 먼저 이혼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이 도장을 찍자고 하면 찍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며 “남편을 떠나 영적으로 편안하게 믿음생활을 하고 싶다고 울며 기도하던 그 무렵, 남편에게 고난이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유 선교사는 42세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 3년 전 여동생이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터라 살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선교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내에게 배운 일본어뿐입니다. 만약 저를 살려주신다면 50세에 일본에 가서 선교하겠습니다.’
강 선교사는 병실에서 남편이 예상치 않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마음 깊이 깨달았다.
그는 “그 순간 문득 1974년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엑스플로 74 전도대회’가 떠올랐다. 당시 65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세계 선교에 헌신할 사람은 일어나라’고 외쳤고 일본어를 전공한 나는 ‘은퇴 후 일본에 갈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랜 세월 속에 잊고 지냈었다”고 회고했다.
수술을 받은 유 목사는 다행히 위암 초기였다. 항암 치료조차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다. 유 선교사는 운동 삼아 링거를 끌고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하나님 없이 살아온 지난날들이 후회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의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는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 죽음을 가까이 마주한 순간이었기에 더욱 절실하게 하나님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며 “그날의 회심과 성령 체험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꾼 전환점이었고 지금까지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눈물의 회심 후 유 선교사는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하나님께 서원한데로 50세에 명예퇴직한 그는 일본 전국의 47개 행정구역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퇴직금 1억원은 1호 바람과불꽃교회 설립의 씨앗이 됐다.
신앙의 추억이 깃든 자리 ‘바람과불꽃교회’
교회가 처음 세워진 메구로구는 외국 대사관과 다국적 기업이 밀집한 지역과 가까워 대사관 직원과 주재원이 많이 살았다. 유 선교사 부부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온 한 성도의 요청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유 선교사는 “당시 주재원이었던 성도가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하는 소규모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고 6명이 꾸준히 참석했다. 그러나 주재원 임기가 끝나 귀국하게 되며 남은 이들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성도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돌볼 영혼이 생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구로구에 사택을 마련하고 정착했을 때 한국인 성도 한 명 외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평신도끼리 해오던 모임에서 ‘목회자에게 성경을 배우는 것이 부담스럽다’게 이유였다. 유 선교사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꺾으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다. 의지할 것이 사라질수록 더 깊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2007년 3월 첫 예배 후 8개월 만에 성도 수가 12명으로 늘자, 교회는 메구로구청 공간을 임대해 한글학교를 열었다. 일본 주재원 자녀들의 언어 교육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취지였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메구로구에 체류하던 강호진·박향수 집사 부부도 바람과불꽃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박 집사는 “재일교포 3세로 주재원 아내들이 자녀를 한글교실에 보내는 걸 보고 나도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어 처음 교회에 갔다”며 “그해 크리스마스때 아이들 공연을 계기로 남편도 처음 교회에 발을 디뎠고 그 순간이 우리 가정 신앙 여정의 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바람과불꽃교회 한국 아웃리치’ 준비위원장인 강 집사는 일본에 오기 전까지 기독교에 부정적이었다고 고백했다. “한국에선 주일마다 ‘예수쟁이들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말할 정도로 교회를 싫어했지만, 아내를 따라 처음 간 교회에서 강 선교사의 따뜻한 환대와 유 선교사의 말씀에 마음이 열려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 선교사 부부의 겸손한 섬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며 “귀국한 뒤에도 두 분을 만날 수 있는 이날 아웃리치는 매년 가장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유 선교사 부부는 일본 현지에 거주하는 주재원 성도들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다가갔다. 말씀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섬기고 나누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며 인내하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에게 신앙의 본이됐다.
박종근 집사는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고 목회자와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유 선교사 부부는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유 선교사 부부의 섬김과 사랑,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며 “바람과불꽃교회는 단순한 예배처소를 넘어, 언제나 그리움과 따뜻함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소중한 신앙의 터전”이라고 덧붙였다.
동역자 제자들과 함께 세워가는 일본 교회
주재원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머문 뒤 귀국하면서 후임을 교회에 자연스럽게 연결해 공동체가 이어지도록 했다. 이후 다시 일본을 찾게 되면 가장 먼저 바람과불꽃교회를 방문했고 귀국 후에도 기도제목을 나누며 일본의 각 지역 교회 개척 사역에 헌금으로 동참하는 등 지속적으로 마음과 물질로 손길을 보태고 있다.
유 선교사 부부와 제자들의 동역으로 지난 19년간 바람과불꽃교회를 통해 세워진 교회는 총 7곳이다. 메구로구를 시작으로 치바현(2008), 카나가와현(2010), 오사카(2016), 훗카이도(2018), 사이타마(2020), 이바라키(2021)에 교회를 설립했으며, 오는 10월에는 나고야 북구에 새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다.
모태가 되는 메구로구 바람과불꽃교회는 새로 개척된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3년간 재정 지원을 이어간다. 유 선교사는 “사택비와 예배당 임대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일본은 교회 자립에 최소 10년은 걸리는 게 현실”이라며 “늘 헌신하는 사역자들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이타마 지역 바람과불꽃교회를 섬기는 최해영 목사는 “사이타마는 인구 730만명의 대도시지만 아직 사역의 열매는 많지 않다”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힘들지만 감사함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역하는 제자들도 일본 선교의 든든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 평내호평에서 사역하는 권태환·갈경옥 목사 부부는 한일 선교의 가교로 헌신하고 있다. 갈 목사는 “우리 교회는 은퇴 목회자 부부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자연스럽게 일본과 바람과불꽃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일본어 찬양을 함께 부르고 배우며 아웃리치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서 일본 선교를 이어가는 사명을 맡기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바람과불꽃교회 한국 아웃리치’ 모임을 위해 공간을 제공한 화곡순복음교회 김성호 목사는 다음 달 청소년·청년들과 함께 바람과불꽃교회로 아웃리치에 나설 예정이다.
김 목사는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 시절 유 선교사와 인연을 맺었고 ‘바람과불꽃교회 한국 아웃리치’ 모임이 너무 귀하다는 생각에 교회 공간을 기꺼이 내어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과 청년들이 일본을 위해 기도하려면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번 여름 아웃리치를 준비하게 됐다”며 “오늘 선교팀과 유 선교사 부부와의 만남이 큰 도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한일 간의 아픈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회복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유 선교사 부부는 이날 ‘바람과불꽃교회 한국 아웃리치’에 함께해준 제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유 선교사는 “일본에 교회가 하나 세워질 때마다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하다”며 “자격 없는 나 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본 선교의 길을 여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번에 시작되는 나고야 교회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잘 세워지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중보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