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롤스로이스·벤틀리 등 초고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이 잇달아 한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확대와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 등 전망이 어두워지자 인구당 럭셔리카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승부수를 띄우는 분위기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럭셔리 브랜드 마이바흐는 지난 14일 서울 압구정동에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을 오픈했다. 단순 라운지를 넘어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겸한 브랜드센터를 설립한 건 전 세계 최초다. 영국 본사 파견 인원을 포함해 3년 간 100명이 넘는 디자이너를 투입했다고 한다. 예약제로 운영하며 방문 고객에겐 전담 컨설턴트가 붙는다.
마이바흐에게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시장이다. 인구당 판매량으로 따지면 한국은 마이바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 시장이다. 마티아스 가이젠 벤츠그룹 마케팅·세일즈 총괄은 “한국은 ‘탁월함’에 관심이 높다. 한국에서 판매한 벤츠 차량 5대 중 1대가 탑엔드(최고급) 브랜드(마이바흐와 S클래스)라는 건 매우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11월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프라이빗 오피스’를 열었다. 롤스로이스 고객 중에서도 일부만 초대받을 수 있다. 이곳에선 맞춤형 차량 제작 주문을 받는다. 차체나 시트에 고객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요청하거나 색상을 지정하면 영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디자이너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차량을 디자인한다.
벤틀리는 2022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벤틀리 타워’를 세웠다. 벤틀리가 글로벌 시장 가운데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복합 공간이다. 신차 전시장, 인증 중고차 판매장, 네트워킹 라운지, 주차장, 정비센터 등을 모두 갖췄다. 이듬해 강남 전시장에 고객 체험형 공간을 갖춘 ‘벤틀리 큐브’를 열었다. 벤틀리의 글로벌 판매에서 한국은 2022~2024년 3년 연속 5위를 기록했다. 애드리안 홀마크 당시 벤틀리모터스 회장은 “한국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람보르기니는 오는 9월 부산에 전시장 오픈을 준비 중이다.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한국에서 본토인 이탈리아(479대)보다 많은 487대를 판매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에게 오프라인 전시장은 단순히 제품 진열을 넘어 럭셔리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명품’ 자동차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부진하자 한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마이바흐의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14% 줄었다. 벤틀리(21.5%)와 롤스로이스(10%)도 두 자리 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의 반부패 캠페인, 경제성장률 둔화,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명품 시장 전반이 흔들린 결과다. 영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카는 최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눈은 이제 서울에 고정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