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WSJ 취재진 배제…‘머독 때리기’로 엡스파인 파문 돌파

입력 2025-07-22 06:26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과거 음란한 편지를 보냈다고 최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해외 동행 취재진에서 배제했다. 트럼프가 WSJ와 소유주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을 때리면서 엡스타인 파문을 돌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WSJ의 허위 및 명예훼손적 행위에 따라 그들은 이번 항공기 동행 13개 언론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오는 25∼29일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데, 취재단에서 WSJ 백악관 출입 기자를 배제한다는 설명이다. WSJ 백악관 출입기자는 스코틀랜드 일정 마지막 이틀간 공동취재단에 포함돼 있었지만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다.

WSJ은 2003년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50세 생일을 맞아 외설적인 그림을 그려 넣은 편지를 보냈다고 지난 17일 보도했다. 다만 백악관 출입 기자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해당 보도 직후 기자 2명과 발행사, 모기업 창립자 루퍼트 머독 등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폴리티코는 “현재로서는 WS 제외가 일시적인 조치인지 아니면 백악관의 언론 정책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트럼프 2기 취임 이후 백악관은 AP통신도 출입기자단에서 배제한 바 있다. 지난 2월 AP통신이 ‘멕시코만’ 대신 ‘미국만’을 쓰라는 트럼프의 지침을 따르지 않자 대통령 행사 취재에서 배제했다. AP통신이 불복해 소송을 냈고 1심은 AP통신의 접근 제한을 해제하라고 판결했지만, 항소법원은 백악관의 손을 들어줬다.

레빗 대변인은 “항소법원이 확인했듯 WSJ나 다른 언론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을 집무실, 에어포스원, 사적 공간에서 취재할 특별한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며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언론사들로부터 공정성과 책임성을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MAGA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가 주류 언론인 WSJ에 거액 소송 등 강경한 대응을 하면서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다시 뭉치고 있다. MAGA는 트럼프 행정부의 ‘엡스타인 파일’ 처리 문제를 비판하며 내부 분열했다. 하지만 WSJ의 보도 이후엔 이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는 트럼프를 한 목소리로 지지하고 있다.

MAGA 핵심 인사인 스티브 배넌은 “루퍼트 머독의 기괴한 대통령 공격은 내용과 방식 모두 때문에 트럼프의 지지층을 결집했다”며 “이제 트럼프가 머독 가문, 사법부, 그리고 딥스테이트(숨은 권력 집단)에 맞서 공세에 나서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주류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과 루퍼트 머독에 대한 경멸, 대통령이 정치적 적들로부터 부당하게 박해를 받았다는 믿음 등 MAGA의 불만을 활용해 가장 분열적 순간을 가장 통합적 순간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