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를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일찌감치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제공한 사실을 공개하며 선두 자리를 수성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추격자 입장인 삼성전자는 이번 3분기 샘플 공급에 나설 채비를 갖추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내년 선보일 차세대 그래픽 처리장치(GPU) ‘루빈’에 HBM4를 탑재키로 하면서 양사의 사활을 건 경쟁은 내년을 기점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분기 내 HBM4의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 루빈 등 인공지능(AI) 제품에 HBM4를 공급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에 5세대인 HBM3E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HBM4 공급 문을 열게되면 분위기가 급반전될 수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HBM 물량 대부분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함께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가 추가로 진입하면 가격 하락 등을 기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엔비디아 등에 HBM4 샘플을 공급한 만큼 올해 내 양산 준비를 무난히 마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샘플 공급으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함께 HBM4를 탑재한 루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끔 최적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HBM3를 시작으로 지난해 HBM3E 8단, 12단을 업계 최초 양산에 성공하며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관건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4를 제때 공급할 수 있을지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HBM 시장에 진입하면 HBM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5세대 HBM3E 가격이 올해 대비 내년에 약 30% 하락하고, HBM4 가격 프리미엄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45%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진입이 늦어지더라도 HBM3E의 평균 판매가격은 10% 하락하고, HBM4의 가격 프리미엄은 55%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마이크론의 위협도 변수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주요 고객사에 HBM4의 샘플 공급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HBM3E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한 데 이어 HBM4 샘플 공급 시점에서도 삼성전자를 앞서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가격은 여러 공급사가 경쟁하면 하락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AI 데이터센터 수요와 투자 규모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급격한 가격 하락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